런웨이 대신 패션 편집매장으로 달려간 한국 디자이너들

텐소울 팝업스토어가 열린 홍콩 아이티 매장 내부.

홍콩의 유명 의류 편집매장에 한국 디자이너 10명의 옷이 걸렸다. 매장에 온 손님이 한국 디자이너의 옷을 구경하더니 그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몸에 대고 거울에 비춰 본다. 그에게 모델이 런웨이 위를 걷는 걸 구경하는 패션쇼보다 옷이 가깝게 느껴지는 건 당연하다. 홍콩 사람들의 생활 속으로 한국 패션이 스며들어가고 있는 현장에 다녀왔다.
홍콩=윤경희 기자 annie@joognagn.co.kr 사진=서울디자인재단

텐소울 홍콩 팝업스토어에 가봤더니

텐소울 팝업스토어가 열린 홍콩 아이티 매장 쇼윈도.

지난 4월 13일 오후 6시(현지시간) 쇼핑가인 홍콩 코즈웨이베이의 패션 편집매장 아이티(I.T) 플래그십스토어에서 ‘텐소울(Seoul’s 10 Soul) 팝업 스토어’ 오프닝 행사가 열렸다. 행사에는 조이스와 레인 크로포드, 하비 니콜스 등 홍콩의 유명 백화점과 편집매장 바이어가 몰렸다. 올해 텐 소울로 선정된 이주영·김무홍·정미선·박환성·조은혜 등 한국 디자이너들이 현장에서 직접 손님을 맞으며 옷을 소개했다.

아이티의 데보라 청(Deborah Cheng) 최고영업책임자(CCO)는 “한국 옷에는 뭔가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며 “오늘 행사에 온 바이어들의 반응이 좋다”고 전했다. 팔로워 8만명을 둔 홍콩의 파워 인스타그래머 에블린 초이는 “한국 드라마 때문에 한국 패션에 관심이 많았는데 실제로 옷을 보니 독특하고 과감한 디자인이 많다”며 “서양 브랜드와 달리 아시아 사람 체형과 잘 맞아 홍콩 사람들에게 잘 먹히겠다”고 평했다.

텐소울 팝업스토어 오프닝에는 홍콩 현지의 유명 인스타그래머 등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

생활 속으로 파고 드는 팝업스토어
이번 팝업 스토어는 서울디자인재단이 선정한 올해의 ‘텐소울’ 디자이너 열 팀의 옷을 홍콩의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 자리다. 텐소울은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이 국내 패션 디자이너들의 해외 비즈니스를 돕고 판로개척 기회를 제공하는 글로벌 패션브랜드 육성 지원 사업으로, 매년 서울패션위크에서 해외 바이어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에게 글로벌 역량을 인정받은 디자이너를 선정해 해외에서 패션쇼ㆍ전시 등의 행사를 열어오고 있다. 올해는 이주영(레쥬렉션), 박승건(푸시버튼), 강동준(디그낙), 정미선(노케), 박환성(디앤티도트), 김무홍(무홍), 한현민(뮌), 신규용ㆍ박지선(블라인드니스), 우진원ㆍ김은혜(로켓런치), 조은혜(부리)가 텐소울 디자이너로 선정돼 홍콩 팝업 스토어에 옷을 걸 기회를 얻었다.
사업 초기엔 해외에서 한국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열거나 해외의 쇼룸 개설 지원을 했다가 2014년 정구호 디자이너가 서울패션위크의 총감독으로 임명되면서부터 전시와 판매를 함께 할 수 있는 팝업 스토어를 여는 것으로 방향이 달라졌다. 자신 역시 디자이너로 해외 진출시 겪는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던 그는 실질적인 비즈니스 성과를 내기 위해 해외 시장에 디자이너의 이름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정 감독은 “해외 바이어와 일반 소비자들이 직접 옷을 접할 수 있는 계기와 공간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며 해외의 유명 패션 편집매장 내에 팝업 스토어를 여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그 결과 지난해 6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유명 패션 편집매장 ‘레클레어’를 시작으로 9월엔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엑셀시오르’에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올해는 이번 홍콩 아이티에 이어 하반기에 영국 런던 셀프리지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운영할 계획이다.
실제로 이 행사를 통해 해외에 진출한 성공사례들도 나타났다. 파리 레클레어 팝업 스토어에 참가했던 한상혁 디자이너는 미국 이스트 던, 홍콩 바우하우스 등 해외 쇼핑몰에 입점했다. 강동준 디자이너의 브랜드 디그낙은 미국 하이엔드 스토어 에이치로렌조에, 최무열 디자이너의 블라디스도 이탈리아 트래픽멀티랩, 미국 폴리틱스 스토어, 로빈스에 입점 기회를 얻었다.

올해 텐소울 홍콩에 참여한 한국의 패션 디자이너들.

모이니 가능한 해외진출
이번 홍콩 팝업 스토어는 오프닝 행사가 열린 4월 13일부터 시작해 오는 5월 4일까지 3주간 운영된다. 한정된 기간 동안만 운영하는 임시 매장이지만 그 위치나 규모가 우습게 볼 수준이 아니었다. 팝업 스토어 공간은 아이티 매장 1층 정문 바로 안쪽의 중앙 전시공간부터 시작해 1층 매장 절반에 달했다. 매장의 성격을 보여주는 동시에 고객의 눈길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옷을 진열하는 장소로 그 매장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다. 게다가 아이티 그룹은 홍콩에만 럭셔리 패션을 소개하는 매장 8곳(I.T)와 영 캐주얼 브랜드를 주로 소개하는 매장(i.t) 10곳을 운영하고 있는 거대 패션 회사로, 코즈웨이베이에 있는 플래그십스토어는 젊고 새로운 패션을 소개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텐소울 홍콩 팝업스토어가 마련된 아이티 매장 건물. 이번 팝업스토어를 위해 1층 절반을 썼다.

아이티 역시 이번 행사에 적극 참여했다. 사전에 디자이너들이 보낸 옷 사진을 보고 그 중 매장 컨셉트와 가장 잘 어울리면서 홍콩 사람들에게 흥미를 일으킬만한 옷을 선별해 진열했다. 이미 푸시버튼, 로켓런치, 스티브J 앤 요니P 등 48개의 한국 브랜드를 아이티에 입점시킨 데보라 쳉 최고영업책임자는 “홍콩에서는 한류 열풍으로 배우·가수 등 연예인에서부터 패션까지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매우 크다””며 “아이티에는 고유한 DNA를 가진 한국 브랜드의 옷을 고객들에게 보여주려한다”고 말했다.
 참가한 디자이너들의 반응 또한 좋다. 비용부담 때문에 해외에 개인적으로 쇼룸을 운영하기 쉽지 않은데 팝업 스토어를 통해 쉽게 현지 바이어들에게 관심을 받을 수 있어서다. 이주영 디자이너는 “해외 바이어와 현지 매체, 거기에 소비자들에게까지 옷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1980년대 일본이 정부차원에서 디자이너들의 해외 진출을 적극적으로 도운 결과 지금 꼼데가르송 등 일본 디자이너의 옷이 세계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이제 우리도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미 프랑스·영국·이탈리아·미국·중동 등 해외 20개국의 편집매장에 옷을 입점시킨 김무홍 디자이너는 “개인적인 쇼룸을 운영할 때보다 많은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지고 미팅을 요청해온다”며 “또 유명 편집매장에서 옷을 걸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바이어들에게 매력적인 경력으로 다가갈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텐소울 팝업 스토어에 참가한 이후 팝업 스토어가 열린 레클레어 매장에 여성복을 입점시켰다.

오프닝 행사에 참여한 홍콩 패션 관계자가 김무홍 디자이너(가운데) 등 한국 디자이너와 셀카를 찍고 있다.

이번에 처음 텐소울 디자이너로 선정된 부리 조은혜 디자이너는 "아이티는 개인적으로 꼭 진출하고 싶었던 곳인데 텐소울로 꿈이 현실이 됐다"고 했다. 그는 "여러 디자이너의 옷을 모으니 혼자는 만나기 힘들었던 유명 매장의 바이어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며 "또 바이어, 소비자의 반응이 비교되니 자극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