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결국 수술대 오르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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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조작국 지정 위기라는 한 고개는 넘었지만, 미국의 통상 압박은 계속되고 있다. 방한했던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18일 언급한 '한·미 FTA 개선(reform)''이라는 표현은 한미 FTA 재협상을 공식 요청한다는 뜻은 아니다.

펜스 美 부통령, “한미FTA 개선 추진” #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 ‘눈엣가시’ # 정부, “당장 재협상은 아닐 것” # 전문가, “부분적인 재협상일 가능성 커...냉정히 대응해야”

하지만 방한한 미국 최고위급 인사가 한·미FTA를 콕 찝어 입에 올린 건 처음이라 정부는 진위 파악에 나섰다.

일단 재협상 요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부의 진단이다. 박찬기 산업통상자원부 미주통상과장은 “재협상을 뜻하는 ‘renegotiation’이 아닌 ‘review(점검), reform’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며 “이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미FTA와 관련해 언급했던 표현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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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한·미FTA를 언급할 때 amend(개정), revise(수정) 등의 단어를 썼다. FTA 재협상이나 개선을 요구할 때 법적 용어가 달리 정해진 건 아니지만, 단어의 뉘앙스로 볼 때 트럼프 정부의 한미 FTA 관련 기조가 크게 달라진 건 없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정부의 기존 경제통상정책과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reform’을 반드시 재협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FTA 협상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표현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어느 정부나 할 수 있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면적인 개정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부분적인 손질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미국 측은 법률서비스 시장 개방, 공정거래위원회 조사 투명성 등을 두고 “한국의 FTA 이행이 부진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여기에다 한국의 대(對)미 무역수지 흑자는 트럼프 정부에 여전히 눈엣가시다. 펜스 부통령은 “양국이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지만 무역 관계는 정직해야 한다”며 “미국의 대한 무역적자가 FTA 발효 이후 두 배 증가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한·미FTA 발효(2012년) 이전인 2011년 116억3900만 달러였던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2016년 232억4600만 달러로 늘었다. 미국 상무부가 추정한 지난해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는 277억 달러 수준으로 한국 통계보다 더 많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미국이 한·미FTA에 대해 전면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펜스 부통령의 언급은) 통상 분야에서 상대국의 대규모 흑자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재차 보낸 걸로 읽힌다”고 말했다.  

이에 맞춰 정부는 대미 무역수지에 대한 관리를 하며 '성의'를 보여준다는 계획이다. 셰일가스 수입 확대를 비롯한 미국산 원자재 수입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정부는 올들어 대미 무역 흑자 규모를 줄이고 있다. 올 1∼3월 대미 무역 흑자는 43억5900만 달러다. 1년 전 같은 기간(66억2800만 달러)보다 34.2% 줄었다.

송인창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은 “대미 수출을 유지하면서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을 늘려 양국에 상호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무역수지를 관리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하남현 기자, 유지혜 기자 ha.nam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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