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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년 만에 햇빛 본 정지용 연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납북 천재시인 정지용의 문학과 생애를 본격 연구한 『정지용 연구』(민음사간)가 그의 납북 37년 만에 공식 출간 돼 문단 및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서강대 국문과 김학동 교수가 집필한 『정지용연구』의 출간은 지난달 19일 문공부의 「월북작가의 작품집은 계속 해금을 보류하되 해설· 연구서의 출판은 허용한다」는 해금조치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정지용에 관한 글들은 대학 학위논문이나 문예지 등에서 취급된 적은 있었으나 그에 대한 방대한 연구가 단행본 형식으로 일반 공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이 책은 82년 김교수가 아직까지도 미해금 도서로 남아있는 『정지용전집』 (전2권·민음사)을 엮으면서 집필한 연구서인데 85년 7월 문공부에 납본한 교정쇄가 제작중지 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지형으로만 보관되어 왔었다.
『자료 수집과정에서 정지용이 자진 월북이 아니라 강제 납북됐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머릿글로 출발하고 있는 이 책은 풍부한 사진화보와 함께▲언어의 감각미와 허정원리▲신성성과 「서늘오움」의 시관▲정지용의 생애와 문학▲정지용의 시와 산문 등 4부로 구성됐으며 『향수』 『유리창』 『백록담』 『카페 프란스』등 거의 대부분의 대표작들이 해설의 원문으로 인용돼 있다.
정지용이 휘문고보 2년때 쓴 첫 소설『삼인』(1919) 과 첫발표시 『풍낭몽』(1922)으로부터 50년 납북직전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 『사사조오수』와 기행문 『남해오월점철』까지 시인의 생애와 시적 체험을 폭넓게 연구한 김교수는 지용을 단순히 「탁월한 모더니스트」로 이해하기보다 그의 시력을 통시적으로 접근,▲근원회귀와 실향자의 비애 (초기시) ▲바다의 신비와 성신의 세계 (일본 유학 이후 모더니즘 계열의 시 및 신앙시) ▲산과 허정무위의 세계 (『백록담』 시대) ▲삶의 좌절과 자아생채(해방이후의 시)이라는 세분화된 변모의 구조로 지용을 체계화하고 있다.
마지막 발표작인 『사사조오수』 중 「나비」라는 시를 통해 마치 자신의 비극적 운명을 예감이나 한 듯이 『내가 인제/나비같이//죽겠기로/나비같이//날아 왔다/검정비단/네 옷가에/앉았다가/ 창 훤하니/ 날아간다』고 노래한 뒤 시사에서 사라져 버린 정지용.
김기림과 함께 그에 대한 유족·문단·메스컴· 학계의 해금건의는 숱하게 거듭되어 왔지만 그때마다 거절되었다. 그러나 이번 『정지용연구』의 출간은 그것이 지용의 시 대부분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에 대한 「간접해금」을 의미하며, 나아가 「작품은 규제하고 연구는 허용한다」는 당국의 방침이 얼마나 모순인지를 반증하고있다.
이에 따라 시중에는 정·김의 시를 무단 복사한 비공식 도서들이 난무하고 있다.
재북작가 연구서 허용방침에 따라 내달 새문사에서 『김기림연구』 까지 출간할 김학동교수는 『정지용·김기림 등에 대한 전면 해금은 잃어버린 문학사의 복원을 위한 필연적 요청이자 의무』 라고 말했으며 고대 김우창교수는 『이번 본격 연구서의 공식출간을 계기로 납·월북작가들의 모든 작품이 개방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달초 당국에 아버지 정지용의 해금 및 복권을 또 다시 탄원했던 지용의 장남 구관씨 (60)는 『우선 연구서라도 나올 수 있게되어 기쁘다』고 말하고 『납북된 뒤 남과 북 양쪽으로부터 배척 당하고 있는 지용은 내 아버지일 뿐 아니라 우리문학의 소중한 아버지라고 생각한다』며 조속한 해금을 기대하는 한을 울먹임으로 대신했다.<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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