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북한의 역설을 넘어설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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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계속되는 미국의 강경발언에 북한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일 뿐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진행된 김인룡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차석대사의 성명을 들어보면 ‘해볼 테면 해봐라’는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었다. “미국이 도발해 올 경우 가장 혹독한 방식으로 대응(the toughest counteraction) 하겠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현재 미군의 전력은 역대 최고"라고 경고한 데 이어 방한 중인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도 비무장지대(DMZ)에서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는 등 북한을 점점 옥죄는 상황에서 김 차석대사가 내뱉은 말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개최된 열병식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15일 김일성 생일(태양절) 개최된 열병식 참석해 경례를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전세계 어떤 나라가 최강대국 미국 앞에서 북한처럼 담대할 수 있을까. 뉴욕타임스(NYT)는 이를 두고 ‘북한의 역설’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아무리 큰소리를 쳐도 북한이 꿈쩍 안하는 이유를 북한 전문가들을 통해 풀이했다.
우선 북한은 요즘처럼 극도의 위험에 노출된 지 오래됐다는 분석이다. 1980∼90년대 소련이 해체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흡수통일을 피하기 위해 김정일 위원장이 택한 것은 핵무기였다. 처음에는 미국과 협상을 위해 개발에 착수했지만 이제는 생존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

내부긴장으로 단련된 북한, 외부 위협에 반응 안해 #혹독한 제재안도 북한을 굴복시키지 못할듯 #1990년대 경제제재 당시 살아남는 시스템 구축 #"북핵을 끝장내려면 북한 정권을 끝장내야" 주장도 #"북한은 협상 도구인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

아시아안보 전문가인 데니 로이는 “북한은 극도의 위험에 스스로를 노출시킨 상황에 익숙하다”며 “북한 사람들은 언제든 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긴장감에 휩싸여 있어 바깥의 위협이 일상이 된 내부의 긴장을 넘어설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을 동원한 제재안도 효과를 발휘하기 힘들다는 전망이 나온다. 이미 북한은 1990년대 최악의 기근사태를 맞아 전체인구의 10%가 아사했지만, 오히려 당시의 기근사태가 북한 정권을 더 굳건히 만들고 식품공급 시스템을 정비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체계를 갖췄다는 것이다.

동서대 북한 전문가인 B.R. 마이어스 교수는 “기근 당시 미국과 전쟁을 해보자는 갈망이 북한주민들 사이에 퍼져있었다고 탈북민들이 증언했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떤 혹독한 제재안에도 북한이 이란처럼 미국에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유엔주재 미국 대사였던 존 볼튼은 “북핵을 끝장낼 수 있는 방법은 북한정권을 끝장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한반도에 엄청난 피해가 불가피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미국은 머뭇거리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것은 위험뿐이다. 무기통제 국제운동기구인 군축운동연합(ACA)의 대릴 킴볼 사무국장은 “지금과 같은 작용, 반작용이 계속되면 한반도 내 비핵화 가능성은 사라지고, 핵전쟁으로 황폐화될 가능성만 증가한다”고 지적했다. 

‘비확산 리뷰’ 에디터인 조수아 폴락은 “북한의 전략은 정권을 인정받으면서 미국과 한국을 떼어놓는 일”이라며 “북한은 이같은 거래계약서를 만들 수 있는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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