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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민섭의 변방에서

독립생계를 꿈꿀 수 없는 청년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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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국민의당 대선후보 안철수 의원은 딸의 재산공개를 거부하며, 그녀가 미국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 조교로 재직하며 ‘독립생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그 이유로 들었다. 그에 따르면 안 후보의 딸은 2015년 기준으로 4400만원의 소득을 올렸고 공직자윤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고지 거부를 허용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문재인 캠프의 공세에 결국 지난 11일 딸의 재산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나는 안 후보 자녀의 재산 규모가 딱히 궁금하지 않다. 그저 많겠지, 하고 생각할 뿐이다. 다만 나의 시선은 “박사과정 조교로 독립생계를 유지”했다는 부분에 가서 닿는다. 미국은, 안 후보의 주장을 전적으로 믿는다면 대학원생이 조교 활동만으로 학비를 충당하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그런 나라인 것이다. 실제로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 등 여러 국가에서 대학원생이 행정, 강의, 연구보조 노동을 하는 것으로 학비 전액을 면제받고 별도의 월급과 함께 건강보험과 같은 사회적 안전망을 보장받는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학원생 딸·아들은 조교 노동으로 독립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대개는 임금을 지급받지 못하고 장학금 형식으로 학비 일부를 면제받는 것이 고작이다. 근로계약서를 쓰는 일도 거의 없고, 4대보험이나 퇴직금과 같은 최소한의 사회적안전망도 보장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교수가 강요하는 사적 노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지도교수 자녀의 어린이집 상담을 대신 간다는 대학원생, 매일 아침 구두를 닦아 연구실에 가져다 두어야 한다는 대학원생 등 굳이 ‘인분 교수’나 ‘팔만대장경 사건’을 떠올리지 않아도 기가 막힌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안 후보의 자녀 역시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녔다면 조교 활동만으로 독립생계를 유지해 나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 땅의 대학원생들은 대학에서 각종 노동을 담당하면서도 간신히 ‘생존’해 나간다. 그것만으로는 숨 쉬는 비용을 감당하기도 힘들어 학자금 대출을 받고, 다른 노동을 병행하고,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도 한다.

유력한 대선후보들이 서로의 자식을 둘러싸고 벌이는 논쟁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아들딸들을, 그 부모들을 초라하게 만든다. 그보다는 대학원생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청년 모두가 정당한 노동을 통해 독립생계를 영위할 수 있는 정의로운 국가를 만들겠다고 선언하고 그와 관련한 정책을 내어 놓는 것이, 더욱 대한민국의 대통령 후보다운 모습일 것이다. 국민은 그런 대통령 후보를 원한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