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건강보험 정지놓고 시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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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최장 1년간 제외할 지를 두고 환자와 시민 단체 간 목소리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 [중앙포토]

글리벡을 건강보험 급여 대상에서 최장 1년간 제외할 지를두고 환자와 시민 단체 간 목소리가 서로 엇갈리고 있다.[중앙포토]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을 최장 1년간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제조사인 노바티스가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준 혐의로 재판을 받으면서 글리벡이 건보적용 정지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환자들은 글리벡이 건보 대상에서 제외되면 약값 부담이 급격히 늘어나는 데다 대체약을 쓰는 경우 자칫 부작용도 우려된다며 반대하고 있다.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글리벡 대체약이 많은데다 불법리베이트 근절을 위해서는 엄격한 처분이 필요하다며 건보적용 정지를 요구하고 있다. 

 13일 보건복지부와 제약업계에 따르면 노바티스는 2011년 1월~2016년 1월까지 5년간 의사들에게 의약품 42개 품목의 처방 대가로 25억여원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로 적발돼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문제는 2013년 도입해 이듬해 7월부터 시행에 들어간 이른바 '리베이트 투스트라이크 아웃'제도다. 

 제약사가 의사들에게 의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처음 적발되면 해당 품목들을 최장 1년간 건보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2회째 적발되면 아예 건보에서 퇴출하는 내용이다. 다만 단일품목이거나 희귀의약품, 복지부 장관이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의약품은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적발된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

리베이트 제공 혐의로 적발된 다국적 제약사인 노바티스

 대상이 된 42개 품목 중 비급여(1개)를 제외한 41개 품목 가운데 23개는 대체 약품이 없어 과징금으로 대체될 전망이다. 나머지 18개는 대체의약품이 있어 원칙적으로 건보 급여 정지대상이다. 여기에 만성골수성 백혈병 치료제인 '글리벡'이 포함돼있다. 

 글리벡은 현재 건보가 적용돼 환자들이 약값의 5%만 부담하면 된다. 월 6만 5000원~13만원가량이다. 그러나 건보 적용이 정지되면 한 달에 130만원~260만원을 추가로 부담해야 한다. 또 대체약도 마땅치 않다는 게  백혈병 환자와 가족들의 주장이다.  

제조사 노바티스, 의사에게 리베이트 26억원 제공 적발 #글리벡 등 의약품 42개 품목 처방하는 대가 #'리베이트 투스트라이크 아웃' 첫 적용 대상 #리베이트 1회 적발시 최장 1년간 건보 적용 정지 #2회째 적발되면 해당 품목 건보에서 아예 퇴출 #환자들, "우리만 피해. 정지대신 과징금 처분을" #시민단체, "대체약 있으니 원칙대로 정지 시켜야" #복지부, 다음주 전문가 간담회 개최 뒤 처분 결정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대표는 "아무 잘못 없는 환자가 부작용 우려를 감수하며 수년간 문제없이 써왔던 약을 바꾸는 건 환자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리베이트를 제공한 노바티스에 건보 정지 대신 막대한 과징금을 물리면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글리벡을 문제없이 복용하던 사람이 복제약이나 2세대 신약으로 갑자기 바꾸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며 "설사같은 작은 부작용이더라도 환자가 잘못이 없는데 불안해하면서까지 바꿀 필요가 있느냐"고 말했다. 백혈병환우회에 따르면 국내 만성골수성 백혈병환자는 5000여명 가운데 3000명이 글리벡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안대표는  “국내 만성골수성백혈병환자들이 쓰는 글리벡(베타형)의 경우 아직 특허가 만료되지 않아 복제약이 없다”며 "글리벡(베타형)은 내년 7월에 특허가 만료되는 것으로, 작년 6월에 특허가 만료돼 복제약이 나온 글리벡(알파형)과는 제형이 다르다"고도 했다.   

하지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과 건강세상네트워크 등 시민단체는 "글리벡을 포함한 18개 품목은 대체의약품이 있으므로 원칙대로 급여를 정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글리벡은 2013년에 특허가 만료돼 30여개의 복제약이 나와있고 '스프라이셀''타시그나''슈펙트' 같은  2세대 표적항암제가 있으므로 치료를 받는데 별 무리가 없다는 주장이다. 특히 '리베이트 투스트라이크 아웃'제도의 첫 사례인 만큼 엄격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동욱 서울성모병원 혈액내과 교수는 "글리벡을 쓰던 환자가 2세대 신약으로 바꾸는 것도 대안이긴 하지만 환자들을 위해서는 유예기간을 두는 것을 고려해봐야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글리벡 베타형이 알파형보다 우수한지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임상을 비교한 적이 없어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다만 알파형이 열에 약하고, 발진 같은 가벼운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다.

 김 교수는 또 "오래 친숙했던 약을 바꾸라고하면 환자들은 불안할수 있으므로 약 변경에 따른 부작용을 줄일수 있는 글리벡 베타형 복제약이 나올때까지 기다리는 게 대안이 될수 있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체약이 대학병원에 들어오려면 절차가 복잡해 6개월 이상 걸리는 경우가 많으므로 이점도 감안할 필요도 있다"고도 했다.

다양한 알약들. [중앙포토]

다양한 알약들. [중앙포토]

 이러한 논란 속에 복지부는 행정처분을 내리기 위해 약의 특성과 시장점유율, 환자수 등 기본적인 검토를 끝낸 것으로 확인됐다. 다음주에는 전문가 간담회가 예정돼있다. 이러한 절차를 거쳐 약 품목에 따라 원칙대로 보험 급여를 1년 이내로 정지하거나 유예 기간을 두고 정지할 지, 과징금으로 대체할 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복지부 곽명섭 보험약제과장은 "병원 현장의 전문가 목소리와 환자 요구 등을 어떻게 수렴할지 고민중"이라며 "사회적 관심 사안인만큼 최대한 빨리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민영 기자 lee.m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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