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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의사결정 구조를 리셋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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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라이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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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의 운용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558조원에 달한다. 국내 시장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손이다. 규모가 커지다 보니 국민연금의 움직임은 항상 주목을 받는다. 이번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 건만 해도 국민연금이 열쇠를 쥐고 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대우조선 회사채 규모는 3900억원이다. 만일 국민연금 투자위원회가 채권단이 마련한 채권 만기연장과 출자전환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대우조선은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로 가야 한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등 채권단이 채무재조정안을 일방적으로 강요하고 있다”며 쉽게 동의해 주지 않고 있다.

경제부처를 주로 취재했던 기자 입장에선 국민연금이 큰 틀에서 채권단의 구조조정 방안을 받아들이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P플랜으로 가면 대우조선에 배를 발주한 선주들은 계약을 취소하고 미리 지급한 선수금을 은행이나 보험사에 달라고 요청(RG콜)할 수 있다. 최대 13조원에 이른다. 국책은행인 수출입은행이 들고 있는 것만 8조원이다. P플랜으로 가서 무더기로 계약이 취소되면 대우조선은 망하고 수출입은행 등은 선주들에게 돈만 물어줘야 한다. 대규모 실업도 생길 수 있다. 3900억원 때문에 그런 위험을 질 이유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임무는 기금을 안전하게 운용하는 것이다. 국민연금법에 기업 구조조정이나 국가 경제를 고려하라는 내용이 없지 않으냐.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되면 국민의 노후 재산이 남아나겠느냐”는 반론도 나온다. 무시할 수 없는 얘기다. 결정은 국민연금의 몫이다.

다만 어떤 결정을 하느냐를 떠나 국민연금이 제대로 된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것인지는 되짚어봐야 한다. 국민연금은 앞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한 것 때문에 특검의 수사까지 받았다.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연금에 손실을 끼친 혐의(배임)로 불구속기소됐다. 두 사람의 유무죄는 법원이 판단을 내리겠지만 국민연금의 결정 과정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난 것만은 사실이다.

국민연금의 규모가 커진 만큼 이런 문제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이번 기회에 국민연금의 거버넌스(의사결정 구조)를 개편해야 한다”며 “기금 운용의 독립성과 전문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법을 보면 기금은 보건복지부 장관이 관리·운용하도록 규정돼 있다. 심의·의결기구로 복지부 내에 국민연금운용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여기에 국민연금공단 안에 리스크관리위원회·투자위원회가 있다. 조직은 많지만 권한과 책임이 분명하지 않다. 정무적으로 판단할 부분과 전문가에게 맡길 부분을 명쾌하게 정리해야 논란이 적다. 그래야 연금보험료를 성실히 납부하는 국민의 신뢰를 받을 것이다.

김원배 라이팅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