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개혁 핵심은 사법부 독립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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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새 대법관 임명 제청을 둘러싼 파문이 사회 전체로 번지고 있다. 1백여명의 판사들이 'e-메일 연판장'을 대법원장에게 전달하는가 하면 노무현 대통령의 임명 거부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사법개혁의 핵심이 무엇인지 환기하고자 한다.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독재정권 시절 사법부가 권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 대한 반성과 비판에서 출발했다. 정권과 정부로부터 사법부의 인사권 독립을 확보하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판결할 수 있는 헌법상의 권한을 되찾자는 것이 사법개혁의 요체다.

우리는 소장 판사들의 움직임이 사법부의 진정한 개혁을 위한 충정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뜻이 순수했다고 해서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다. 청와대가 소장 판사들의 집단 행동을 예고한 대목은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움직임이 외부세력의 사법부 개입 구실로 작용하게 된다면 사법권 독립은 근본에서 흔들리게 된다. 자칫 권력의 개입을 자초할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자신이 속한 사법부의 인사에 대한 불만이 오히려 사법부의 독립을 무너뜨리는 우를 범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기 바란다. 사법부 독립과 인사불만 중 어느 가치가 더 우위에 있는지 스스로 성찰하기 바란다.

민주주의는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권력의 분립을 통한 균형과 견제다. 그런 측면에서 대법원장이 제청한 후보에 대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얘기되고 있는 상황은 대단히 우려할 만하다. 행정부가 사법부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재야법조계나 시민단체들도 권력과 한 편이 되어 사법부의 고유권한을 무너뜨리려 해서는 안 된다. 재야가 요구하는 대법원 구성의 개혁은 전적으로 사법부의 독립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 사법부가 그만한 판단력과 이성을 갖추고 있다고 우리는 믿는다.

대법원장이 제청한 대법관 후보자에게 중대한 결함이 없는 한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지금 청와대는 언론에 대한 소송을 쏟아내고 있다. 민주사회의 두 기둥인 언론과 사법부의 위축을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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