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 '노무현 사돈 14년 전 음주사고' 민정수석실 입막음 의혹 … 문재인 당시 수석 몰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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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 사돈(아들 건호씨 장인) 배병렬씨의 음주사고를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전 행정관 ‘음주운전 문건’ 제보 #경찰인 피해자 “청와대, 엄청 찾아와” #접촉한 직원 숨져 사실 파악 곤란 #문 “초기 합의 처리 … 윗선 보고 안 돼”

사건은 1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4월 배씨는 경남 김해에서 음주 사고를 일으켰다. 피해자는 임모 경위(당시 경장)였다.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지 두 달여 만에 벌어진 이 사건은 당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2월 언론에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김만수(현 부천시장) 청와대 대변인은 “피해자 임씨 주장 외에 입증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접촉사고 후 두 사람 사이에 합의서가 작성됐으나 임씨가 배씨의 신분을 알고 승진과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파장이 커지자 민정수석이던 문 후보도 “경찰청 본청 감사 결과 사실관계가 임씨의 주장과는 다른 것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결국 사고 후 3년이 지난 2006년 4월 배씨가 벌금 200만원에 약식 기소되면서 논란이 일단락됐다.

◆ 왜 불거졌나=수년간 잠잠했던 이 사건이 다시 떠오른 것은 노무현 정부 청와대 행정관이었던 A씨가 관련 문건을 언론에 제보하면서다. 이 문건에는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배씨의 음주운전을 인지했을 뿐 아니라 사태 수습을 위해 고심한 흔적도 담겨 있었다.

문건에는 “사돈 배병렬은 2003. 4. 24. 음주 만취된 상태에서 자신의 소유차량을 몰고 귀가하다가, 19:10경 김해 진례면 신월리 용전마을 입구에서 (임모씨 소유의) 승용차와 정면충돌하였는바”라며 배씨의 음주사고 내용을 적시했다. 또 “내가 누군데 감히 이러느냐?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 추정)과 내가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 등 고성을 지르며…” “(배씨가) 명일 술이 깬 뒤 상대 운전자에게 사과하고 차량 수리비를 변제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며 향후 음주 자제 권유 등이 긴요함”이라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문 후보는 알았나=핵심은 당시 민정수석이었던 문 후보의 인지 여부다. 민정수석실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대통령 가족 및 친인척 동향 파악이어서다. 문 후보 측은 “2003년 사고 당시에는 내용을 보고받지 못했고, 2006년 2월 언론 보도 이후 관련 사실을 알게 됐다”고 했다.

문 후보도 6일 기자들과 만나 “2003년 사고 당시에는 사람이 크게 다치지 않은 사건이었고 당사자들 간에 원만하게 합의가 된 사안이어서 윗선까지 보고되지 않았다”며 “2006년 피해자 측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기 때문에 그때부터 아주 엄정하게 사건 처리가 됐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 김경수 대변인도 5일 “이호철 당시 민정비서관에 따르면 (사고 후) 관련 보고서를 받았지만 당사자 간 원만히 합의가 됐다고 해서 자체 종결 처리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많이 될 것 같은 것만 민정수석에게 보고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민의당 주승용 원내대표는 “대통령의 사돈이 사고를 냈는데 민정수석이 보고를 못 받았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서 “몰랐다면 무능이고 알았다면 직무유기”라고 비난했다.

바른정당의 오신환 대변인은 “불과 정권 출범 2개월 만에 일어난 대통령 사돈의 음주운전 사고를 민정수속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니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라고 했다.

피해자인 임 경위가 현직 경찰인데 합의처리했다는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당시 배씨는 단순 접촉사고로 처리됐다.

경찰 관계자는 “음주사고는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에 임의로 합의 처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문 후보 측 김경수 대변인은 “2003년만 하더라도 동네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생기면 원만하게 상호 간에 합의하곤 했다”고 해명했다.

◆입막음 있었나=임 경위는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당시 사고를 빌미로 인사 청탁을 한 적이 없고, (청와대에서) 입막음하려고 엄청 많이 찾아왔다”고 주장했다. 청와대에서 접촉한 것은 문 후보 측도 인정한다. 김만수 당시 대변인은 “임씨가 청와대에 민원을 제기해 민정수석실 직원(오모 행정관)이 부산에서 임씨를 만났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 후보 측은 “입막음을 시도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강력 부인했다.

당시 임씨와 접촉한 오 전 행정관은 지난해 1월 간암으로 사망해 임씨 주장이 사실인지 여부는 확인이 어렵다. 당시 비서관 자격으로 사고 보고를 자체 종결했다는 이호철 전 정무수석은 이날 입장자료를 통해 “(임 경위의 주장 및 언론 보도는) 사실무근”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관련자들에 대해선 법적 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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