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유화책이 시리아 화학무기 폭격 불렀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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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주 칸셰이칸 지역의 주택가가 생지옥으로 변했다. 시리아 정부군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화학무기 폭격 때문이다. 잠을 자고 있던 어린이 등이 독성 가스에 노출되면서 피해자가 속출했다. 아이들은 호흡곤란 증세와 함께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숨진 아이들과 입과 코로 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는 아이들의 모습은 세계를 경악시키고 있다.

“알아사드 축출이 우선 아니다” 발언 #시리아 정부의 오판 불렀을 가능성 #영국·프랑스 등은 “정권 교체해야”

반군 지역에서 활동해온 의료지원단체 관계자는 영국 일간 가디언에 “희생자들의 반응과 규모로 봤을 때 염소가스 이상의 신경제재로 보인다”고 말해 금지된 사린 가스가 사용됐을 가능성에 무게를 실었다.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구호가 본격화하고 있는 가운데 집계된 희생자 수도 늘고 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시리아인권관측소(SOHR)에 따르면 사망자는 최소 어린이 20명을 포함해 72명에 달한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는 4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시리아 정부를 제재하는 내용의 결의안 초안을 제출했다.

국제 사회가 시리아 정부를 규탄하고 나선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정부가 최근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축출에 우선 순위를 두지 않겠다고 밝힌 것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미국 정부의 입장 변화가 아사드로 하여금 전쟁 범죄를 저질러도 된다는 오판을 하게 만들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미국, 영국, 프랑스는 국제기구인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시리아 공격 실태를 조속히 조사해 보고하도록 하는 결의안을 마련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요청으로 5일 열린 안보리 긴급회의에서 이 결의안이 논의됐다.

하지만 시리아 정부는 칸셰이칸 사태가 자신들과 무관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군의 화학무기 창고가 시리아 정부군의 폭격으로 터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방 지도자들은 시리아 정부의 소행으로 보고 아사드 정부의 퇴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는 “아사드 정권에게 미래는 없다. 시리아의 아사드 체제를 교체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마르크 에로 프랑스 외무장관은 “시리아 정부가 새로 출범한 미국 (트럼프)정부를 시험한 것”며 미국 정부에 시리아에 대한 입장을 확실하게 취하라고 압박했다.

최근 트럼프 정부 고위 인사들은 대시리아 정책의 변화를 시사했다. 니키 헤일리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지난달 30일 “미국의 시리아 정책 우선 순위가 더이상 아사드 축출에 있지 않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같은 발언들이 버락 오바마 전 정부와 미국의 주요 우방들이 고수해온 정책의 변화를 공식화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내고 “알아사드 정권의 악랄한 행위는 전임 (오바마) 정부가 나약하고 우유부단하게 대응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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