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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낯설면서도 매혹적으로… 동양적 정서가 미국서 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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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한국 영화 산업의 규모(1999~2003년 5년 평균)는 연간 약 1조1000억원(10억6800만 달러), 세계 8위다. 그래도 일본(세계 2위, 연간 6조3000억원)에 비하면 6분의 1수준에 불과하다. 세계 1위인 미국(연간 29조원)의 29분의 1이다. 세계 영화 산업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1.7%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국 감독과 배우들에게 미국은 '꿈의 시장'이다. 실제 강제규. 이명세.심형래 등 미국 영화 시장 공략을 시도하는 한국 감독들도 적지 않다. 이미 몇 편의 한국 영화가 미국 시장을 두드리기도 했다. 그러나 성적표가 그리 좋진 않았다. 왜일까. 한국 영화의 미국행, 어떤 장벽들이 버티고 있는 걸까.

"영화 '스캔들'을 보세요. 매우 코믹한 영화죠. 하지만 맛깔 나는 대사를 영어 자막으로 옮기면 맥이 빠져요. 대사에 담긴 뉘앙스를 살릴 수가 없거든요."

미국 메이저 영화사인 파라마운트에서 마케팅.배급 부문 부사장을 맡고 있는 지니 한(37.사진). 아홉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한 그는 한국 정서와 미국 정서를 모두 꿰고 있는 '영화통'이다. 휴가를 틈타 잠시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달 26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파라마운트에 드림웍스가 인수되기 전이었죠. 영화 '올드보이'의 내부 시사회를 드림웍스에서 한 적이 있어요. 미국 내 배급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자리였죠. 반응은 '영화는 좋다. 그러나 흥행은 어렵다'였어요." 스토리가 너무 논쟁적(Controversial)이라는 의견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성공한 영화인데, 미국 관객에겐 그리 안 먹히는 경우가 많다. 그는 장르 선택부터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코미디'와 '액션'은 힘들어요. 코미디 영화는 뉘앙스의 차이를 전달하기 힘들죠. 한국의 배꼽 빼는 조크가 미국에선 썰렁할 뿐이죠. 또 수천억 원씩 쏟아붓는 할리우드 액션 대작과의 경쟁도 어려워요. 액션의 덩치부터 차이가 나죠."

대신 그는 '아시아적인 낯섦'을 무기로 내밀라고 했다. 미국인이 '낯설지만 매혹적'이라고 느낀다면 승산이 있다는 지적이다.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은 미국에서 큰 히트를 기록했죠. 미국 전역에서 개봉, 1억2000만 달러 이상 벌었어요. 또 장이머우 감독의 '영웅'도 4500만 달러를 기록했어요. 둘 다 아시아적인 정서와 아시아적인 비주얼로 3000개가 넘는 블록버스터급 스크린을 확보했죠."

미국 개봉 한국 영화 중 최고의 흥행 수익(238만 달러)을 올린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도 동양적인 이미지와 정서가 승부수였다고 한다.

또 '친절한 금자씨'에서 보여주는 여자의 치밀한 복수극도 미국 관객에겐 대단히 낯설고, 흥미로운 소재라고 했다.

그런데 '아시아적'이라고 다 통하는 건 아니다. "미국 관객은 '러브 스토리'하면 남녀 간의 얘기로 생각해요. 형제 간의 우애나 오누이의 진한 정에는 그다지 공감하지 않아요. 문화적 차이죠."

그러고 보니 '태극기 휘날리며'는 전쟁을 배경으로 형제애를, '태풍'은 분단을 배경으로 오누이의 정을 그리고 있다. 미국 관객의 공감대 확보가 과제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는 "미국 시장을 노린다면 영화 기획 단계부터 전략을 짜야 한다"며 "마케팅이나 배급망으로만 미국 시장을 공략하려 한다면 승산이 적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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