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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달전 법복 벗었던 판사 “내가 판사 그만두고 방위사업청 간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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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공부해서 대학에 갔더니 이제는 사법시험만 합격하면 내 뜻을 원없이 펼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꾹 참고 공부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더니 이제는 판사. 그래서 판사가 됐더니 이제는 부장판사만 되면…. 아무래도 이건 아닌데…

남은 절반의 인생은 오로지 ‘나’로서 살아보고 싶다.”

정재민 전 판사. [중앙포토]

정재민 전 판사. [중앙포토]

지난 2월 법복을 벗은 정재민 전 의정부지법 판사(40ㆍ사법연수원 32기)가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이같이 썼다.  

정 전 판사는 대부분의 전직 법관이 선택하는 변호사가 아닌 방위사업청 원가검증팀장으로 지난 2월 9일 자리를 옮겼다. 정 전 판사는 군납비리 관련 사건을 맡아 중형을 선고해 화제가 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잡지에 기고글을 쓰며 “내 자신을 믿어주고 ‘내 삶’을 치열하고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이길을 선택했다고 회고했다.

정 판사는 “‘나’보다 비대한 ‘판사’라는 꼬리표를 잘라버리고 ‘정 판사’가 아니라 ‘정재민’으로 살아보고 싶다”며 “ 번듯한 명함에 기대치 않고 대접이 더 나쁘더라도 내 이름 석 자의 무게로 살기로 했다”고 썼다.

        ‘유학에서 돌아오는 길에 결심했네. 다시는 지금까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내 스스로가 얼마나 위대한지 시험해볼 기회가 없었네. 스스로를 신뢰한 적이 없었네. 이제는 내 혼자 힘으로 가는 데까지 가다가 막다른 골목을 만나면 거기서 쓰러지겠네.’  -나스메 소세키


그가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된 데는 ‘나쓰메 소세키의 편지’가 한 역할을 했다.  그는 “이 중에서도 ‘스스로를 신뢰한 적이 없었네’라는 구절이 정곡을 찔렀다”고 했다.

그러면서 판사직이 싫어서 그만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되레 분에 넘치는 직업이었다고 했다. 그는 “나이와 깜냥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았다. 실제보다 더 반듯한 사람인 양 신뢰받았다. 경력이 같은 다른 공무원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았다. 타인으로부터 괴롭힘도, 무시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자신이 방위사업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 행정부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것”이었다며 과거 행정부 일의 스케일과 재미와 보람에 홀딱 반한 기억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무엇보다 방위사업청 자체의 매력이 컸다”며 “구축함이나 헬기를 프라모델로 만들어도 뿌듯한데 세계를 다니면서 장비와 부품을 구해서 실제로 디자인하고 조립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재미있겠는가”고 했다.

또 “모난 돌이 돼 사방에서 정을 맞고 따돌림을 당하더라도 불법과 부패에 부역하지 않을 것이다. 진급과 평판에 인질 잡히지 않고, 옳지 않은 일은 하지 않고, 옳은 일은 반드시 실현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책임지는 것을 회피하지 않는 그런 양심적인 공직생활을 한번 시도해보고 싶다”고 각오했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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