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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리셋 코리아

18세 이하 입원진료비, 나라서 95% 보장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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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신성식 기자 중앙일보 복지전문기자
정종훈 기자 중앙일보 기자
추인영
추인영 기자 중앙일보 기자

아동 복지 투자 늘리자

“민구의 꿈이 궁금해요.”

리셋 코리아 복지분과 제안 #비용 부담 돼 치료 못받는 아이 많아 #입원진료비 지원 땐 비용 연 4600억 #건보 흑자의 3%만 투자하면 해결 #중증 지원 집중 …과잉의료는 막아야

걸그룹 걸스데이의 혜리가 병상에서 민구를 안고 있는 아빠에게 묻는다. 민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빠와 혜리를 번갈아 본다. 민구(11)는 뇌를 다쳐 말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다. 딱한 사정이 나갈 때마다 TV 화면의 자동응답전화(ARS) 모금 액수가 가파르게 올라간다. 2014년 7월 방영된 KBS 1TV의 ‘사랑의 리퀘스트’의 한 장면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1997~2014년 868억원을 모금해 의료비·주거비 등으로 지원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외국에서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선진국은 아동 진료비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한국은 이런 제도가 없어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의존했다. 박근혜 정부는 ‘암·뇌질환·심장병·희귀병 100% 건강보험 보장’으로 제도화를 시도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전신 85% 화상으로 매년 수술을 받아야 하는 민혁(가명·15)군. 오른팔을 잘 쓸 수 없어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사진 김춘식 기자]

전신 85% 화상으로 매년 수술을 받아야 하는 민혁(가명·15)군. 오른팔을 잘 쓸 수 없어 일주일에 세 번은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는다. [사진 김춘식 기자]

2004년 3월 어느 날 한순간의 사고가 인천에 사는 민혁(15·가명)이네 가정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생후 18개월 민혁이가 주방과 연결된 문이 열리면서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졌다. 전신 85% 화상이었다. 치료비를 대기 위해 서울의 아파트를 팔았다. 엄마는 충격을 이기지 못해 극심한 조울증을 앓는 정신장애인이 됐다. 아빠 박혁기(54)씨는 민혁의 간병과 재활치료를 보조하기 위해 직장을 관뒀다.

민혁이는 매년 수술을 받는다. 지금까지 17차례 받았다. 한 번에 1400만원이 든다. 민혁과 엄마 약값으로 50만원이 나간다. 박씨는 빌딩 청소와 식당일로 월 100만원을 버는데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금(68만원)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금(20만원), 병원이 수시로 연결해주는 수술비 후원금으로 버틴다. 박씨는 “화상 치료비가 건강보험이 안 되는 게 많은 데다 계속 치료해야 하므로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며 “후원금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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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의료비 지원, 저출산 극복에 도움

※18세 이하 기준, 본인 부담률 5% 가정했을 경우, 자료: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18세 이하 기준, 본인 부담률 5% 가정했을 경우, 자료:김윤 서울대 의대 교수

저출산이 심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민구 같은 아이들이 아파도 걱정 없이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 못지않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복지분과는 세 차례 회의에서 ‘아동 의료비 국가 보장’을 어젠다로 제시했다.

송인한(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분과장은 “국가 보장을 통해 ▶아동 복지 투자 확대 ▶건강지수 향상 ▶출산율 제고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모든 어린이가 사회적·경제적·지리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아동 의료비 지원 정책이 아이에 대한 사회 투자이고, 양육·건강을 사회가 책임진다는 점에서 찬성한다”며 “장기적으로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위원들은 18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 95% 보장(5% 환자 부담)을 선호했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진료비뿐만 아니라 비보험 진료비 비용도 포함한다. 입원이 외래 진료보다 중증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외래 진료비는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김윤 교수는 아동의 한 해 입원진료비(104만 건, 2014년 기준)를 기준으로 할 때 4594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환자 부담률을 10%로 하면 2300억원이 필요하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언제까지 어린이 병원비를 방송 모금에 의지해야 하는가”라며 “건보 재정 흑자(20조원)의 3%인 5000억원이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6세 미만 무상 입원 실패 답습 말아야

다만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 불필요한 진료가 늘 수 있는 점을 경계했다. 2006년 6세 미만 무상 입원을 시행했다가 전년에 비해 비용이 11.7%(6~10세는 7.3% 증가) 늘어 2년 만에 폐지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자는 뜻이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공공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어린이병원의 중증 진료비에 한해 지원하되 연간 환자 부담을 100만원으로 묶자”고 제안했다. 진미정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희귀병과 중병 치료비 지원에 집중하되 가족의 간병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건보 재정 20%는 국고 지원 자료:각 후보, 국회예산정책처

*건보 재정 20%는 국고 지원 자료:각 후보, 국회예산정책처

*건보 재정 20%는 국고 지원 자료:각 후보, 국회예산정책처

*건보 재정 20%는 국고 지원 자료:각 후보, 국회예산정책처

중앙일보·JTBC의 시민 의견 수렴 사이트인 ‘시민마이크’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다. “18세 이하 (무상 의료) 지원은 너무 나간 것 같다. 15세 이하가 적당하다”(아이디 dlwl****), “5세→10세→15세로 단계적으로 확대하자”(memu****), “재정을 고려한다면 단순 의료비 지원은 논란이 예상된다. 주기적 건강검진 지원이나 돌봄·재활서비스 등을 단계적으로 지원했으면 한다”(anan****)고 제안했다. 반면 조모씨는 “무릉도원에 핀 복숭아꽃 같은 얘기”라며 “재원이 뒷받침되지 않는 복지는 이뤄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신성식 보건복지전문기자, 추인영·정종훈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