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연을 결심한 결정적 계기가 자녀들 때문이라고.
“아들이 3D 시각효과를 전공해서, 원작 애니메이션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사실 촬영지가 뉴질랜드라 2개월간 집을 떠나 있는 게 싫어 망설였다. 그런데 아이들이 내게 꼭 출연하라고 당부하더라.”
- -‘고스트 인 더 쉘’이라는 독특한 세계에 살아 본 소감은.
“이렇게 권위적인 세계에서 과학자로 사는 건 끔찍한 일인 듯하다(웃음). 이 세계에는 지금의 현실이 반영돼 있다. 늘 정치적 억압과 테러 위험이 도사리는 현실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공간이랄까. 도시의 삶은 자연과 분리돼 있고, 사람들의 정신은 혹사당한다. 이 영화는 이런 곳에서 우리가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지,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 어떤 방향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돌이켜 보게 한다.”
- -닥터 오우레는 베일에 싸인 인물이다. 어떤 캐릭터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하다.
“천재적 지능을 가진 사람인데, 지식을 더 확장하고 싶은 마음에 군사·정치적 영역으로 들어섰다. 말하자면 악마와 거래해 자기 덫에 스스로 빠진 사람이다. 그래서 메이저를 향한 마음도 모순적이다. 그는 과학자로서의 야심 때문에 메이저를 만들었다. 이 캐릭터에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을 향한 애착, 메이저를 딸처럼 돌보고 사랑하는 마음이 모두 담겨 있다. 오우레를 연기할 때 딸아이 생각을 많이 했다. 메이저를 향한 그의 마음은 진실해야 하니까. 나 자신의 모습이나 내가 보고 느낀 경험이 들어 있지 않으면 계산적인 연기가 되어 버리게 마련이다. 배우로서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등 작가 감독의 예술영화에 자주 출연해 왔다. 이렇게 규모가 큰 영화 촬영과 다른 점이 있나.
“연기할 때 예산 규모에 따라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그보다는 어떤 감독의 어떤 촬영 현장인지가 중요하다. 샌더스 감독은 굉장히 열려 있는 사람이다. 연기에 대해 압박하지 않았고, 촬영 기간도 여유로운 편이었다. 편하게 연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개인적으로는 촬영장에서 시각효과 기술자에게 이것저것 물어봤다. 우리 아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 그 분야가 전도유망한지 생각하기도 했다(웃음).”
-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살아왔다. ‘배우’로서의 자신의 정체성, 배우의 역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연기를 하는 이유는, 자아를 더 탐구하고 나의 또 다른 층위를 찾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경계하는 건 ‘반복’이다. 비슷한 영화에 출연해 기존의 내 연기 패턴을 반복하는 건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항상 새로운 역할에 도전하고, 새로운 영화를 접하고 싶다. 연기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무언가를 창조해 내는 작업이다. 그 작업 자체가 나 자신의 일부가 되기도 하고. 내 몸에 쌓인 경험과 상상력의 결합이랄까. 그래서 나이 들고 성숙해질수록 연기를 잘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