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약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거짓말에도 색깔이 있다.「새까만 거짓말」(블랙 라이)은 악의에 찬 거짓말을 두고 하는 말이다. 반대로「새하얀 거짓말」(화이트 라이)도 있다.
가령 누가『당신 생일에 무슨일이 일어날지 궁금하면 마태복음 28장21절을 보라』고 말했다고 하자. 실제로 성경을 펼쳐보면 마태복음 28장21절은 없다. 이런 거짓말은 횐색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거짓말의 색깔을 새빨갛다고 한다. 영국사람에게「크림즌(진홍색)라이」라고 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굼하다.
필경「빨갱이」의 거짓말을 염두에 두고 그런 말이 생겼을 것도 같다. 아니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붉은 색을「부정」이나 도깨비의 심벌로 여기고 있다.
고대인들사이엔「죄를 지은 사람」을 붉은 색으로 표시하는 풍속도 있었다.『주홍글씨』의 작가「N·호돈」도 간음한 사람의 옷에 붉은 글씨로「A」자를 새겨넣는 얘기를 했다. 아뭏든 붉은색은 좋은 색깔만은 아니다.
요즘 대통령선거철을 맞아 국민들은 모처럼 호사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멀지않아 유토피아가 무지개처럼 우리 눈앞에 열릴것 같다. 왜 진작 그처럼 좋은 의견과 정책이 실천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대권주자들은 오늘을 위해 좋은 의견들은 감추어 두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뭏든 사람들에게 조물주는 좋은 습관 하나를 주었다. 시간이 가면 저절로 잊어버리고 마는 건망증의 버릇이 그것이다.
만일 건망증이 없었다면 이세상엔 벌써 없어져야 했을 직업들이 한둘이 아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일것 같다. 선거때마다 쏟아 놓는 알록달록한 거짓말들은 현기증이 날 정도다.
지난 얘기보다 이제부터라도 대통령주자들의 공약을 책으로 엮은 공약집을 만들어 나중에 얼마나 실천에 옮기는지 지켜볼만하다.
물론 언론도 그런 구실을 해야겠지만 사회운동 단체에서 책자로 묶어 여러 사람이 그것을 보관하고 있게 만들면 새까만 거짓말도 색깔이 좀 엷어질것 같다.
거짓말의 색깔이 아니라 거짓말 자체를 감시하는 노력이 있어야 정치도 제대로 될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