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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공각기동대', 22년 만에 부활한 전설의 사이보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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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시리즈(1995~)가 2000년대 SF영화에 미친 영향은 얼마나 될까. 스티븐 스필버그, 제임스 캐머런 등 SF 감독들은 이 작품에 대한 애정을 공공연히 밝혀 왔다. 1995년에 선보인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는 전 세계를 강타하며 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거장 반열에 올려놓았다. 

두뇌를 포함한 모든 신체의 기계화가 가능해진 2029년, 존재를 규정짓는 조건은 무엇인가. ‘공각기동대’는 ‘사이보그’라는 매혹적인 SF 소재를 통해 정체성에 관한 철학적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할리우드에서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3월 29일 개봉, 루퍼트 샌더스 감독, 이하 ‘고스트 인 더 쉘’)이라는 제목의 실사영화를 완성했다. 스칼렛 요한슨 캐스팅을 두고 ‘화이트워싱(Whitewashing·유색 인종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것)’ 논란이 일었지만, 그럼에도 궁금함을 누를 수 없다. 그림으로만 봤던 화려하고도 음울한 디스토피아는 어떻게 실사로 구현됐을까. ‘공각기동대’가 던졌던 질문은 지금의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올까.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

공각기동대:고스트 인 더 쉘

SF 장르의 신기원 ‘공각기동대’
‘공각기동대’는 인간과 사이보그의 경계가 흐려진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여기에서는 인간의 뇌와 사이보그의 육체를 연결시키는 전자두뇌화(전뇌화) 시술이 보편적으로 행해진다. 이런 하이브리드 인간은 컴퓨터 케이블을 몸에 부착해, 원하는 정보를 쉽게 탐색할 뿐 아니라 생체 리듬도 조절할 수 있다. 극 중 사이버 테러를 집중 관리하는 부서 ‘공안 9과’ 요원들은 대부분 이런 하이브리드 인간이다. 문제는, 전뇌 네트워크에 자유자재로 침투해 정보를 훔치는 해커 ‘인형사’가 나타나면서부터다. 공안 9과의 쿠사나기 소령(타나카 아츠코·목소리 출연)은 개인 기억을 조작하는 인형사 추적 도중 존재론적 의문에 맞닥뜨린다. 나는 인간인가? 아니면, 나는 나 자신인가?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인터넷의 바다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직전 세상에 나온 ‘공각기동대’. 이 애니메이션은 시대의 아이콘 같은 작품이었다. 지금 봐도 여전히 탄성을 자아내는 도심 액션 장면들은, 이 작품이 얼마나 시각적으로 혁신적인 애니메이션이었는지를 증명한다. 그와 더불어 ‘공각기동대’가 던진 미래의 인간 정체성에 대한 화두는, 인터넷 초기 유저에게 새로운 세상에 관한 영감을 안겨 줬다. 그러나 지금은 2017년. 더 이상 네트워크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며 미래의 인간적 실존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전설 같은 ‘공각기동대’ 이야기를 지금 관객이 공감하며 볼 수 있을까?

‘고스트 인 더 쉘’ 무엇이 바뀌었나?
‘고스트 인 더 쉘’은 원작의 배경과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되 내용은 일부 바꾸었다. 쿠사나기 소령은 이 영화에서 ‘소령’이라는 뜻의 ‘메이저(Major)’(스칼렛 요한슨)로만 불린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범죄자를 처단하는 사이보그 병기인 그는 끔찍한 사고에서 구조된다.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인간의 정신을 해킹하고 조종해 테러를 가하는 이들에 맞서는 것이다. 메이저는 그 임무를 수행하며 자신의 생명이 구조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그는 자신의 과거를 찾기 위해, 또 테러를 막기 위해 싸움을 시작한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고스트 인 더 쉘’은 2008년부터 기획된 프로젝트다. 그 시작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드림웍스 픽쳐스와 함께 ‘공각기동대’ 실사화 판권을 획득하면서부터. 마블 스튜디오의 전 CEO 아비 아라드가 스필버그 감독 앞에서 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피칭했는데, 그는 “‘공각기동대’에 대해 줄줄 꿰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의 딸에게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라드를 비롯해 할리우드 제작자 후지무라 테츠 등 미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 중인 일본 프로듀서들이 이 프로젝트에 힘을 보탰다. 지금의 ‘고스트 인 더 쉘’ 시나리오는 그렇게 완성했다. “메이저가 악당을 쫓아가는, 직설적인 탐정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현재 공개된 ‘고스트 인 더 쉘’의 30분 푸티지 영상에는 원작을 오마주한 장면이 눈에 띈다. 잠입 수사를 위해 메이저가 고층 빌딩에서 낙하하는 장면, 물속에서 전뇌화를 거치는 장면, 메이저가 용의자와 도심 외곽 물가에서 한판 결투를 벌이는 장면 등등. 첫 극장판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 속 몇몇 장면을 그대로 실사화한 것처럼 보이는 대목의 연속이다. 한편 잠입 수사 도중 메이저가 게이샤 로봇들과 한바탕 싸움을 펼치는데, 이는 ‘공각기동대’의 극장판 속편 ‘이노센스’(2004, 오시이 마모루 감독)를 참고한 장면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스트 인 더 쉘’의 악당은 ‘공각기동대’처럼 인형사가 아니다. TV 애니메이션에 등장했던 천재 해커 ‘쿠제’가 악당으로 언급되지만, 원작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그 대신 인형사, 스마일맨, 쿠제 등 ‘공각기동대’ 시리즈의 여러 악당을 섞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메이저가 악당과 본격적으로 대결을 벌이게 될 후반부는 할리우드 액션영화 코드를 따라갈 듯하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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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이후 22년이 흘렀으니 시대가 변했고, 인류가 직면한 문제도 달라졌다. “정보가 가장 중요한 세계에서 생존의 열쇠는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제작진의 말처럼, 원작에서 공안 9과로 등장했던 ‘엘리트 섹션 9’이 맡은 가장 큰 임무는 개인의 정체성 보호다. 이에 대해 아라드는 “현대인의 가장 큰 공포는, 뇌를 해킹당하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도둑맞는 것”이라며 암시를 흘린 바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인간인가 아닌가’를 고민했던 쿠사나기 소령과 달리, 메이저는 자신의 아이덴티티가 ‘진짜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쪽에 가깝다. 메이저를 디자인한 닥터 오우레(줄리엣 비노슈), 사이보그 시스템에 반기를 든 해커이자 테러리스트 쿠제(마이클 피트)는 그와 관련해 단서를 주는 인물로 등장한다.

한편 원작 팬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주인공 메이저 역을 할리우드 스타 배우 스칼렛 요한슨에게 맡긴 것이었다. ‘어벤져스’ 시리즈(2012~)에서 블랙 위도우 역을 맡아 할리우드 대표 액션 여전사로 자리매김한 요한슨. 그는 ‘루시’(2014, 뤽 베송 감독) ‘그녀’(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에서 기계화되는 인간과 AI 역을 각각 연기하기도 했다. 나른한 중저음의 목소리, 수수께끼를 품은 것처럼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이 사이보그 캐릭터에 어울린다는 평가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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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문화가 공존하는 디스토피아
현시대와 조우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스트 인 더 쉘’은 아시아인 캐릭터에 백인 배우를 캐스팅했다는 이유로 ‘화이트워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를 불식시킬 만한 요소도 영화 속에 두루 보인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은 “이 영화를 준비하며 다양한 문화·종교·인종이 공존하는 범아시아 같은 미래 세계를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런 의미에서 샌더스 감독은 일본·뉴질랜드·호주·프랑스·영국·미국·짐바브웨·싱가포르·중국 등 16개국에서 온 배우들을 캐스팅했다. 메이저의 부사령관 바토 역은 덴마크 출신 배우 필로우 애스백, 엘리트 섹션 9을 이끄는 다이스케 아라마키 역은 일본의 감독 겸 배우 기타노 다케시, 전직 경찰 토구사 역은 싱가포르 배우 친 한이 연기한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이 영화의 공간 역시 “서양과 아랍의 영향을 받은 미래의 메트로폴리스로 비춰지도록”(샌더스 감독) 만들었다. “극 중 길가에 보이는 광고들은 우리가 맞이할 혼재된 문화를 표현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샌더스 감독과 미술감독 얀 롤프스는 원작 시리즈 외에도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부터 1980~1990년대 초반 유럽의 디자인 요소까지 참고했다. 촬영은 주로 뉴질랜드 웰링턴에서 이뤄졌고, 중국의 상하이와 홍콩에서 추가 촬영을 진행했다. 특히 “고대 전통과 현대 자본이 뒤엉킨 홍콩 풍경은 이 영화의 밑그림이 되었다”는 게 롤프스 미술감독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동안 많은 SF영화가 진한 파란색과 회색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어 왔다. 하지만 샌더스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 세계가 메이저의 개인사를 비롯해 희망과 가능성까지 반영된 총천연색 세상이 되길 바랐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뉴욕=홍수경 영화저널리스트 사진=파라마운트 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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