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인지대 1105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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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생수회사 장수천 사업 등과 관련해 "근거없는 보도를 했다"며 중앙.조선.동아.한국일보 등 4개 언론사에 직접 5억원씩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한국 정치에선 처음 있는 일이다. 충격과 함께 적잖은 궁금함을 남긴다.

盧대통령은 5월 28일 장수천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 이후 소송 준비를 법무비서관실에 지시했다고 한다. "당초 언론중재위에 먼저 가자는 내부 제안도 있었지만 盧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는 게 홍보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소장에서 盧대통령은 "국민의 모범이 돼야 할 무거운 도덕적 책임을 지는 자로서 그 신뢰성과 명예에 크나큰 손상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자신이 당한 피해가 있다면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직접 소송은 벌써부터 다양한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소송 대상과의 '등가성(等價性)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직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外患)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는다. "민사상의 소추 면제에도 암묵적 양해가 이뤄져 왔다"고도 전문가들은 말한다. 자칫 대통령의 민.형사 소송이 관행화될 경우 권한.책임 간의 심각한 불균형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과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게 대통령이란 공적 신분이다. 대통령의 주변에 대한 의혹 제기의 강도가 일반 자연인과 똑같을 수 있느냐는 의문도 나온다. '자연인 노무현'이었다면 친형의 부동산 관련 의혹 보도는 애초 대상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소송가액이 30억원인 이번 소송의 인지대는 1천1백5만5천원이다. 盧대통령의 개인비용으로 마련했다고 한다. 민사소송의 경우 당사자 변론주의에 따라 盧대통령 또는 위임받은 대리인이 법정에 서야 한다. 만의 하나 판사가 盧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면 재판정에 나와야 하는 상황도 가능해 여러 우여곡절이 예상된다.

소송 대상의 선정 과정도 궁금했다. 답변과정은 몇차례 바뀌어 갔다. "법무비서관실에서 법률적 검토를 했다"(尹대변인)~"대변인실에서 일괄 답변할 것"(법무비서관실)~"아직 그 부분은 확인을 못했다"(尹)~"대상 회사의 왜곡 정도가 심했던 때문"(尹)~"추가로 가능한지 검토 중이다"(尹).

최훈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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