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 혁신 대학 못 나오면 한국은 낙오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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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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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이 희망을 잃고 있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청년에게 좋은 일자리와 함께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려면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가 하지 못하는 새로운 산업, 문화, 플랫폼, 규범 등을 창출하는 ‘4차 산업 선도국가’로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광복 후 70년간 선진국을 모방하면서 따라잡는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로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국가 모델로는 더 이상 뻗어나갈 수 없다.

대학·정부출연연·산업계 지원 #통합 관리할 부처 개편이 필요

디지털 기술이 물리·생물 등의 영역과 기하급수적으로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도자(first mover)가 되지 못하면 좋은 일자리를 갖지 못한다.

새로운 과학적 지식의 발견, 아이디어의 발명이 새로운 상품이나 공정의 혁신으로 이어져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100번 시도 중 1~2번 성공하는, 죽음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위험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대학은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위험을 줄여주고 분담하는 역할을 해 왔다. 구글이 스탠퍼드대에서 튀어나와 10년도 되지 않아 글로벌 기업으로 성공한 것처럼 많은 외국의 대학은 혁신의 중심지가 됐다. 연구에서도 과거처럼 상품 개발과 일정 거리를 유지하기보다 기업의 상품 개발 및 응용 연구와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면서 혁신의 전 과정에서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대학 중 10년 안에 미국의 스탠퍼드대와 같은 혁신 중심지 역할을 하는 대학이 나오지 못한다면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선도자를 양성하지 못하고 낙오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혁신만큼이나 포용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과학과 기술이 급격히 융합·발전하는 시기엔 변화에 대응할 역량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낙오자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포용적 대학(inclusive university)’을 표방하는 애리조나주립대(Arizona State University: ASU)가 주목받고 있다. ASU의 마이클 크로(Michael Crow) 총장은 2002년 취임하면서 “기존의 엘리트 대학들은 고교 때 최상위 성적을 보여주지 못한 학생들을 얼마나 많이 배제하느냐에 따라 순위가 매겨진다”고 비판하고 “ASU는 더 많은 학생을 포용해 역량을 높이는 것으로 평가받겠다”고 선언했다. ASU에서 특히 눈여겨볼 점은 첨단 교육공학을 활용해 학생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학습이 가능하도록 한 점이다. 기초과목에서는 인공지능이 학생의 수준에 맞춰 다양한 피드백과 학습 경로(pathways)를 제공하고, 학생 지도에선 이어드바이저(eAdvisor)가 컴퓨터 데이터베이스를 바탕으로 전공·과목·수업시간 등을 선택할 수 있게 도와 준다. ASU의 학과 통폐합은 더욱 파격적이다. 지난 10년 동안 69개 학과를 폐지하고 새로운 융합 학과 30개를 만들었다. 예컨대 천문학과와 지질학과를 통합해 지구·우주탐사학부를 만들어 협력적으로 연구하고 교육한다.

한국에서도 미국의 ASU와 같은 혁신과 포용의 새로운 대학 모델이 나오려면 대학에 자율부터 주어야 한다. 최근 교육부가 구조조정을 한다면서 모든 대학을 획일적 잣대로 평가하고 제재하며, 퇴출돼야 할 대학에도 지원금을 줘 가며 연명시키고 있다. 교육부는 이처럼 대학을 관장하고, 미래부는 출연 연구기관과 과학기술 지원을 담당하며, 산업부가 산학협력을 통한 연구개발 지원을 담당하면서 부처 간 힘 겨루기가 곳곳에서 벌어진다.

이 문제를 해소하려면 대학을 교육부의 규제 중심 통제에서 떼어내어야 한다. 그런 다음 대학과 정부 출연연구기관, 산업계에 대한 지원을 통합적·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정부부처 개편이 필요하다. 영국의 BIS(Department of Business, Innovation and Sills)와 같은 ‘혁신전략부’(가칭)가 그러한 모델 중 하나다. 대학의 자율을 대폭 확대하는 동시에 대학에 대한 지원을 과학기술 및 산업 지원과 함께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희망하는 대학과 통합하도록 지원함으로써 대학의 연구 역량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 이제 정부는 대학이 혁신의 중심지인 동시에 포용의 산실로서 대전환하도록 통제와 개입을 철폐하고 혁신 생태계 조성에 집중해야 한다.

이주호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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