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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민간잠수사 "배 모습 보는 것만으로 힘겨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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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사고 당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달려가 수색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신준민 경북지부장이 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사고 당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달려가 수색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신준민 경북지부장이 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특수부대를 제대하고 30년 이상 잠수부 일을 하면서 시신을 셀 수 없이 건졌습니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 현장은 이게 정말 현실인지 헷갈릴 정도였습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닌데 그렇게 많은 희생자가 나왔으니까요."

지원 나섰던 특수임무유공자회원들 #"전쟁터도 아닌데…현실같지 않았다" #배 모습 드러내자 괴로워 TV 끄기도

 군에서 4년간 북파공작원으로 복무한 신준민(53) 대한민국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장은 2014년 4월 16일 일어난 세월호 참사 당시를 이렇게 기억했다. "칠흑 같은 바닷속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으면 이따금씩 '탕! 탕!' 배 벽을 때리는 소리가 났어요. 배 안에 있던 공기가 분출되면서 나는 소리였겠지만 그 소리가 마치 생존자들이 안에서 벽을 치면서 나는 소리처럼 들려 두려웠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신씨도 그때 생각만 하면 눈시울이 금세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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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사고 당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달려가 수색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신준민(왼쪽) 경북지부장과 회원들이 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세월호 참사 소식을 듣고 사고 당일 전남 진도군 팽목항으로 달려가 수색작업에 자원봉사로 참여했던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신준민(왼쪽) 경북지부장과 회원들이 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신씨를 비롯한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은 세월호 참사 당일 경북 포항시에 있는 사무실에서 처음 소식을 들었다. 그는 "자원봉사를 마치고 사무실에 있는데 TV에서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전했다"면서 "전원 구조라고 하기에 신경쓰지 않고 있었는데 그게 오보였다"고 전했다. 회원들은 곧장 수난구조 장비를 싣고 팽목항으로 향했다. 88올림픽고속도로(현재 광주~대구고속도로)를 타고 광주광역시와 목포시를 거쳐 팽목항에 가니 이미 오후 9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그렇게 사고 현장에 도착한 잠수부들은 예상과 달리 바로 투입되지 못했다. 실제 잠수가 이뤄진 것은 17일 오후 2시가 지나서였다.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신준민(왼쪽) 경북지부장과 회원들이 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신준민(왼쪽) 경북지부장과 회원들이 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이들은 처음 2~3일간 잠수사들을 이끌어주는 가이드라인을 설치하는 데 집중했다. 이후 전국에서 잠수사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며 구조 작업이 시작됐다. 신씨는 물속을 떠다니는 세월호의 잔해, 희생자들의 물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사망자들을 봤다. 신씨는 "시신을 보고도 건져올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위험해서 다가가지 못한 것도 있지만 시신 인양은 해경의 몫이었다"고 전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작업을 나가기 위해 고속정에 타고 있다. [사진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이 작업을 나가기 위해 고속정에 타고 있다. [사진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

 정상민(38)씨도 신씨와 함께 현장에 있었다. 정씨는 "처음엔 물살이 그렇게 센지 모르고 수중카메라까지 들고 들어갔다. 그런데 조금만 잠수를 하니 수경이 벗겨질 정도로 조류가 강했고 시야도 거의 확보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물살이 잦아드는 정조기엔 대기만 시키다가 정조기가 끝난 뒤에 작업을 시키니 답답했다"고 말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앞을 더듬으며 수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정씨도 그때를 생각하면 목이 메인다. 그는 "그때 활동했던 민간잠수부들은 대부분 트라우마를 겪었거나 겪고 있을 것"이라며 "낮에는 수색을 하고 밤에는 TV로 뉴스를 보니 잠 자는 시간만 빼고 24시간 세월호 생각만 했다. 유가족들에 대한 미안한 마음, 생각보다 도움이 못 되는 것 같아 느끼는 압박감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 정상민 복지부장이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 2017.03.23

세월호 참사 당시 수색작업에 참여했던 대한민국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 정상민 복지부장이24일 경북 포항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포항=프리랜서 공정식 / 2017.03.23

 처음엔 호기롭게 수색 작업에 나섰던 정씨와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들도 시간이 지날수록 지쳐갔다. 정씨는 "유가족들이 가장 애닳았겠지만 잠수사들도 매일 고통스러워 잠들기 전에 소주를 한두 잔씩 했다"면서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을 구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회원도 있었고 작업 지시를 내리지 않는 당시 서해해경청장에게 눈물로 호소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지난 23일 오전 세월호는 침몰 1072일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정씨는 그 모습을 지켜볼 수 없어 TV를 꺼버렸다. "배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을 봤습니다. 겉에 따개비가 많이 붙어 있더군요. 내부는 더욱 부식이 심하게 됐겠단 생각이 들면서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더이상 배를 보고 있기가 힘들었어요." 

 정씨는 "재난은 예고하지 않고 찾아온다"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그는 "재난 대비를 위해 예산을 마련하더라도 수년간 재난이 없으면 그 예산이 빠져버리곤 한다"면서 "평소에도 재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예비비를 마련해 두고 숙련된 구조인력도 최대한 많이 양성해놓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항=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 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이 수중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 전남 진도군 해역에서 특수임무유공자회 회원이 수중 수색 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특수임무유공자회 경북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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