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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은 장신구가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반클리프 아펠' CEO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CEO 니콜라 보스

최고급 원석으로 예술적인 장신구를 만드는 하이 주얼리(high jewelry) 세계는 늘 자연과 교감해왔다. 희귀한 보석을 예술적 상상력과 정교한 기술로 빚어내는 과정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제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원석이라도 꽃잎의 고운 선과 동물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실물보다 아름답게 표현할 수는 없을 테니.
프랑스 하이 주얼리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도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동물의 세계에서 영감을 얻은 하이 주얼리들을 선보여 왔다. 가장 최근에는 전설적인 이야기인 ‘노아의 방주’에서 영감을 얻은 컬렉션을 발표했다.

'노아의 방주' 컬렉션전 연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CEO

3월 10일부터 26일까지 홍콩에서 열리는 ‘라크 드 노아(L’Arche de No )컬렉션 전시회에서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그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기도 하다.

반클리프 아펠이 노아의 방주에 대한 헌정으로 동물의 왕국을 연상케 하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 '라크 드 노아'를 선보였다. 나비, 큰부리새, 강아지, 올빼미, 다람쥐, 코끼리를 모티브로 한 쌍씩 제작한 클립(왼쪽부터).

반클리프 아펠이 노아의 방주에 대한 헌정으로 동물의 왕국을 연상케 하는 하이 주얼리 컬렉션 '라크 드 노아'를 선보였다. 나비, 큰부리새, 강아지, 올빼미, 다람쥐, 코끼리를 모티브로 한 쌍씩 제작한 클립(왼쪽부터).

3월 9일 홍콩 중심가 센트럴에 있는 아시아 소사이어티 홍콩 센터에서 반클리프 아펠 '노아의 방주' 컬렉션 전시회가 개막했다. 하느님의 계시에 따라 큰 배를 만들어 대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은 노아와 동물들의 이야기는 성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반클리프 아펠은 노아와 함께 방주에 들어간 동물들과 상상 속 동물을 모티브로 보석 컬렉션을 선보였다.

거대한 박스 형태의 전시장에 들어서니 사면 벽 아랫쪽에 푸른색 LED 불빛이 파도처럼 물결쳤다. 관람객 눈높이에 설치된 작은 박스들에는 동물 형상의 하이 주얼리 컬렉션이 전시됐다. 말썽꾸러기 원숭이, 전속력으로 달리는 말, 날아오를 준비가 된 이국적인 새 등 동물 60쌍의 클립이 자리했다. 상자 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마치 큰 배 안에서 작은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4분에 한 번씩 천정에서 쏟아지는 천둥 효과음과 음악 덕분에 실제로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듯했다. 천둥음과 함께 ‘배’ 안의 불빛이 꺼지면 전시 박스 안을 비추는 불빛은 더욱 밝아지면서 컬렉션이 더욱 부각됐다. 노아의 방주를 타고 보석 동물들과 함께 항해를 하는 기분이었다. 이 생생한 느낌의 전시장은 현대 공연예술계의 거장인 로버트 윌슨이 디자인하고 연출했다.

독특한 전시 기법에 대해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CEO는 “보석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멋·우아함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르지만 이번 전시회를 통해서는 보석이 갖고 있는 다른 면모를 강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보스는 반클리프 아펠의 경영을 책임지는 CEO이면서 동시에 창조 부문을 책임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다음은 일문일답.

프랑스 하이 주얼리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이 홍콩 아시아 소사이어티 센터에서 '노아의 방주' 컬렉션 전시회를 열었다.푸른빛 조명은 파도, 네모난 진열창은 방주 안 창문을 표현했다.

프랑스 하이 주얼리 브랜드인 반클리프 아펠이 홍콩 아시아 소사이어티 센터에서 '노아의 방주' 컬렉션 전시회를 열었다.푸른빛 조명은 파도, 네모난 진열창은 방주 안 창문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를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보석의 다른 면모란.
“보석은 단지 비싸고, 희귀하고, 우아하고, 멋을 내는 데 사용하는 장신구만은 아니다. 보석은 장식미술의 한 부분이고, 노아의 방주 컬렉션 전시회의 경우는 설치 미술의 영역이기도 하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고 새로운 감정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대중을 대상으로 전시를 기획했다. 하이 주얼리 매장은 들어가기 꺼려지지만 전시회는 누구나 올 수 있다. 보석을 잘 모르더라도 누구나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어린이도 관람할 수 있다. 일부 전시 박스는 어린이 눈높이에 설치했다.”

1954년 탄생한 '라 부티크' 컬렉션의 카탈로그 커버. 윙크하는 고양이, 갈기가 있는 사자 등 재치 넘치는 동물 모양이 반클리프 아펠의 상징이 됐다.

1954년 탄생한 '라 부티크' 컬렉션의 카탈로그 커버. 윙크하는 고양이, 갈기가 있는 사자 등 재치 넘치는 동물 모양이 반클리프 아펠의 상징이 됐다.

-'노아의 방주'라는 영감은 어디에서 왔나.
“두 가지 관점이었다. 반클리프 아펠은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자연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특히 동물의 세계에서 상상력을 얻어 다양한 아름다움을 하이 주얼리로 표현해 왔다. 마침 지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 게티미술관에서 네덜란드 화가 얀 브뤼겔이 '노아의 방주'를 주제로 그린 회화 작품을 접했다. 동물들이 줄지어 배 안으로 들어가는 장면이었는데 다양한 색채와 움직임이라는 내러티브가 흥미로웠다. 동물들이 짝을 지어 방주에 오르는 장면은 자연에 대한 교감이자 커플 간 사랑을 연상케한다. 한 프레임 안에 동물, 커플, 러브 스토리, 대홍수를 피한 해피 엔딩까지 모두 들어 있어 이거다 싶었다.”

영원한 부활의 상징인 피닉스를 모티브로 한 클립.골드 마더 오브 펄과 미스테리 기법으로 세팅한 루비를 썼다.

영원한 부활의 상징인 피닉스를 모티브로 한 클립.골드 마더 오브 펄과 미스테리 기법으로 세팅한 루비를 썼다.

-이번 컬렉션을 모두 클립(브로치)로만 구성한 이유는.
“동물을 목걸이나 귀걸이, 반지로도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동물의 형상이 한 눈에 들어오는 건 아무래도 클립이다. 기능이 모양을 결정한다고 하지 않나. 동물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모든 작품을 클립으로만 만들기로 결정했다. 브로치는 미니 조각품이자 오브제다. 형상에 대한 제약도 적다. 고민은 각 동물의 크기였다. 결국 실제 동물 크기를 무시하고 모두 같은 사이즈로 통일했다. 대신 동물마다 표현 기법과 해석을 달리 했다.”


-동물마다 각각 다르게 사용된 기술은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상상의 동물인 유니콘은 미스터리 세팅이라는 어려운 기술을 사용해 신비스러운 느낌을 강조했다. 보석을 잡고 있는 발이 안 보이게 세팅하는 기법으로, 작은 주얼리에서 구현하기 까다롭다. 코끼리는 어린아이 드로잉 같은 느낌을 내기 위해 색을 다양하게 쓰고 원석의 큼직한 단면을 통째로 몸통으로 조각했다. 실제 노아의 방주에 탄 동물도 포함했지만 유니콘ㆍ불사조 같은 상상 속 동물도 추가했다. 다만, 상상 속 동물은 커플이 아닌 홀로 방주에 오르는 것으로 설정했다.”


-어떤 의미인가.
“오늘날 더 이상 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동물의 암수 구분을 잘 못하겠던데.
“하하. 성별 구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몇몇 동물은 구분할 수 있지만 대체로 사이즈가 너무 작아 이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양성 평등의 관점에서 봐달라.(웃음)”

전시를 연출한 아티스트 로버트 윌슨.

전시를 연출한 아티스트 로버트 윌슨.

-아티스트 로버트 윌슨과 함께 작업하게 된 배경은.
“하이 주얼리 컬렉션을 예술 작품처럼 전시하기 위해서다. 시각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리고 싶었다고 할까. 보석에 가장 중요한 존재는 빛이다. 윌슨은 빛을 사용하는 데 있어 탁월한 예술가였고, 때문에 단번에 그를 떠올렸다. 창의적인 무대 장치, 단순한 움직임 구조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도 세계 관객과 비평가의 찬사를 받는 예술가다. 그가 빚어낸 빛과 음악의 예술 덕분에 전시에 더욱 몰입할 수 있다. 윌슨의 단순한 무대 장치 덕분에 매우 장식적이고 디테일한 컬렉션이 더욱 강조됐고, 스토리 이해력도 높아졌다.”


-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동시에 맡는 데서 오는 어려움은 없나.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대상이 없다는 것? 하하. 다른 사람을 탓할 수 없다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하지만 대부분 창의적인 제품이 실제로 많이 팔린다. 너무 단순하고 기본적인 것은 별로 성공적이지 못하다. 고객들이 반클리프 아펠에 기대하는 비전은 창의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두 역할을 동시에 맡아서 좋은 점은.
“내 뜻대로 밀고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원한다면 리스크를 감수하고서라도 일을 추진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아의 방주 컬렉션을 클립으로만 구성하는 것은 마케팅 관점에서 똑똑한 선택은 아니다. 목걸이나 팔찌 등을 만들면 제품 종류가 훨씬 다양해지지만, 이번에는 클립만 선택했다.”

-최근 경기 하락이 하이 주얼리 메종에도 영향을 미치나.
“세계적 경기 침체 영향으로 명품 시장도 성장 속도가 느려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반클리프 아펠은 100년 넘게 지속하는 동안 많은 걸 겪었다. 경기가 침체될 때도, 폭발적으로 성장할 때도 있었는데 모든 위기를 슬기롭게 넘겼다. 그만큼 내공을 쌓았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경기 상황 때문에 메종의 정체성에 손을 대면 반드시 실패한다. 상황에 맞춰 비용과 운영 방식을 조정할 뿐이다.”

-일반 관람객들이 전시를 어떻게 보아주길 바라나.
“하이 주얼리에 대해서는 편견이 있다. 하이 주얼리 고객이나 컬렉터를 제외하고는 미술 애호가들조차 주얼리는 장착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전시를 보고 기쁨과 재미, 감동, 장인 정신 등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지금의 관람객 중에서 10년, 20년 후 컬렉터가 되거나 주얼리 장인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닐까.”


-하이 주얼리 본연의 역할은 뭔가.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다. 동시에 투자의 대상이기도 하다. 경기가 나쁘다고 하이 주얼리 비즈니스가 꼭 나쁜 것도 아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투자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는 하이 주얼리가 좋은 투자처가 될 수도 있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유니콘을 좋아한다. 현실감 있으면서도 상상력을 채워주기 때문이다.”

반클리프 아펠 노아의 방주 컬렉션 전시회는 인터넷(vcaarchedenoe.hk)으로 예약하면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홍콩=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사진=반클리프 아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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