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 침체국면으로|미 경제 신뢰감 상실이 발단|한국에 통상 압력 거세질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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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세계경제에 비상이 걸렸다. 엄청난 쇼크를 준 지난 19일「암흑의 월요일」 뉴욕증권시장의 대 폭락 사태이후 미국경제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에 심상찮은 조짐이 일고 있는 것이다.
1929년 대공황의 재판으로까지는 가지 않는다 해도 세계 경기의 대세가 「침체국면」으로 빠져들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근착 외지들의 진단도 대부분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비관론 쪽으로 기울고 있다.
최근의 주식폭락사태가 단순한 머니 게임의 일시적 현상이라기보다 세계 경제의 기관차 구실을 해온 미국경제의 구조적인 취약성이 곪아터진 것이라고 보고 있다.『당연히 올것이 왔다』는 미국경제학자들의 단정적인 지적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동안 내연되어 온 미국경제의 불안요인들이 주식시장의 폭락현상을 통해 보다 명백히 드러났을 뿐이라는 이야기다.
물론 지금의 미국은 대공황을 당했던 20년대 말과는 사뭇 다르다. 은행의 연쇄부도를 막기위한 갖가지 안전강치가 제도화되어 있으며 정부의 위기관리능력 및 국제 간의 협력체제도 대공황 때와는 비교가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사태로 미뤄볼 때 세계경제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 시작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경기 사이클 면에서도 하강국면으로 반전될 시기가 예상되어 왔던 터에 이 같은 혼란상태로 말미암아 심각한 가속현상마저 우려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시장에서의 심리적 충격은 악순환을 촉발하기 십상이다. 가뜩이나 딜레머에 빠져온 미국경제가 이번 사태로 더욱 신뢰감을 잃게 되어▲미국 내 해외자본이 빠져나가고▲이를 막기 위해 금리가 오르며▲달러가치의 하락이 계속되는 등의 연결고리가 전개될 경우엔 낭패다.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함께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세계경제가 빠져드는 시나리오다.
낙관론자들이 거는 희망은 이 같은 위기가 미국 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반에 걸친 문제이므로 더 이상의 파동을 막기 위해 미·일·서독 등 국제 간의 협력 작전이 개시되지 않겠느냐는 기대에서다.
예컨대 일·서독 등이 미국의 무역적자 축소를 돕기 위해▲내수증진책을 쓰는 것을 비룻 해▲국내금리를 내려 미국의 금리상승을 막고▲외환시장의 개입을 통해 달러 환율을 안정시키는데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이라는 계산이다.
물론 선진국들의 이 같은 공동노력이 실현될 경우 극단적인 혼란사태의 진정 및 재발 방지에 상당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의 중심시장인 미국경제가 기본적으로 건강을 되찾지 못하는 한 국제협력의 한계도 명백하다. 이미 고질이 되어버린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를 여하히 줄여나가는가가 문제해결의 요체이기 때문이다.
뉴스위크가 인용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 10년 간 근로자1명당 소비증가가 3천1백 달러인데 반해 소득증가는 9백50달러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자라는 돈은 투자를 줄이거나 외채를 꿔다 썼다는 이야기다. 또한 생산보다 소비가 많은 형편이니 수임이 늘어날 수밖에 없고 따라서 무역수지 적자 확대를 초래해왔다는 것이다.
재정적자의 축소는 미국 정부의 결단과 노력으로 상당한 진전을 기대할 수 있다해도 무역적자의 축소문제는 미국 혼자서 될 일이 아니다. 수출을 늘려야 하는데 이는 자신들의 경쟁력제고뿐 아니라 다른 나라가 사줘야한다. 미국인들 스스로도 『일·서독이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려 미제물건을 많이 사 쓰도록 하는 것은 미국인들이 소비를 줄여 수입을 축소시키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임을 깨닫고 있다.
결국 해결의 초점은 미국경제가 여하히 쓰임새를 스스로부터 줄여나갈 수 있느냐로 집약된다. 일부에서는 이번의 주식폭락사태가 미국경제가 정신을 차릴 수 있는 전화위복의 기회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상당기간 고통스럽더라도 경기침체를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미국이 수출을 늘리지 못한 채 수입축소에만 의존해 무역적자를 줄여나가려 할 경우다. 이렇게 될 경우 교역량 자체가 감소해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심각한 불황 국면으로 빠져들 공산이 크다.
지난 대공황 때도 미국의 무역수지는 흑자를 기록했었음을 기억해야한다.
어쨌든 미국경제가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는 한 싫든 좋든 세계경제 전체가 심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그럴경우 특히 불황의 시발점이 미국이라는 점에서 한국경제에 대한 직접적인 파급이 불가피하다. 미국 가구의 20%가 주식투자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동차·가전제품·사치성 소비재 등의 소비가 줄어들 것이 뻔하고 보면 우리의 대미수출이 순조로 울리 없다.
환율 면에선 엔화의 추가적인 강세가 예상됨에 따라 득을 볼 소지가 없지 않으나 대미달러환율의 절상 및 통상압력은 훨씬 거세어질 것을 각오해야할 입장이다. 최근의 미국 신문·잡지에서는 수입개방이나 환율문제를 거론할 때면 한국을 아예 일·서독 등과 동일한 선상에 올려놓고 있다.
물가 쪽도 걱정이다. 대내적으로 선거와 임금상승에 따른 인플레요인이 만만치 않은 마당에 미국을 비롯한 세계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져 들게되면 주요 원자재를 포함한 수입물가의 상승도 각오해야할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대 변환을 소화해 내야할 우리 경제로서는 뜻밖의 해외악재가 겹쳐들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미국경제가 상당기간 진통에 빠져듦에 따라 그 여파가 한국경제에도 심각히 미쳐질 것이라는 점이다. 특히 예상되는 고 환율·고 임금체제라는 미경험의 양으로 진입하게될 경우 이를 당해낼 산업구조 조정을 비롯한 경제운용을 어떻게 꾸러나갈지가 걱정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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