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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좀 크게 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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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세계무역기구(WTO) 중심의 다자 간 무역자유화에 안간힘을 쓰는 마당에 양자 간, 지역 간 짝짓기 경쟁은 모순돼 보인다. FTA는 분명 양면성을 갖는다. 뜻이 맞고 상호 보완적인 나라들끼리 먼저 FTA를 맺고 점차 대상을 넓혀 궁극적으로 세계의 무역자유화를 실현시켜 나간다는 의미에서 자유화로 가는 디딤돌이다. 반면 중단기적으로 '그들만의 FTA'는 여타국에 배타적일 수밖에 없다. WTO 체제는 반(反)세계화.반(反)자유화의 저항에 부닥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WTO 체제가 실패로 끝날 경우 양자 간, 지역 간 FTA는 그들끼리 무역전쟁을 피하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된다. 따라서 거미줄처럼 열심히 FTA로 얽어 놓지 않으면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한국은 세계 11위의 무역대국이지만 FTA 체결에서는 지각생이다.

이런 점에서 한.미 FTA는 선택이 아닌 시기의 문제이며 빠를수록 좋다. 중국 및 일본과 먼저 하자는 주장도 드세다. 그러나 일본과는 6차례 협상을 거듭했음에도 교착상태이고, 중국은 아직 WTO 가입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다. 미국은 우리에게 중국 다음의 큰 수출시장이고 미국에 한국은 7번째 교역국이다. 이 때문에 한.미 FTA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래 15년 만의 최대 이벤트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과의 FTA 하면 미국에 우리 시장을 내놓는 피해의식부터 앞선다. 우리가 걱정하는 농산물과 서비스 부문은 현재의 WTO 체제 아래에서도 어차피 추가 개방이 불가피하다. 오히려 이번 FTA를 우리 농업의 틀을 새로 짜고 서비스산업을 고도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한.미 간 무역마찰이 FTA 틀 안에서 해결되고, 중장기적으로 예측 가능하고 안정된 미국 시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우리에겐 소중하다. 앞으로 중국 및 일본과의 FTA 체결 때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고, 경쟁 대상국들에 대한 경쟁적 우위 등 부수적 이익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한.미 FTA는 비틀거리고 있는 한.미동맹 등 한.미 관계를 호전시키고 포괄적 동맹으로 관계를 심화하는 결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 한국이 미국 기업과 자본의 아시아 거점이 되면 안보는 물론 동북아 허브 구상도 추진력을 받을 수 있다. 미국과 대립각을 세워 온 노무현 정부에 FTA 체결은 실로 믿기지 않는 중대결단이다.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양국 관계의 지속적 결속을 위한 신임투표'라고 의미를 부여할 정도다.

문제는 앞으로의 협상과정과 비준을 둘러싼 중단기적 시점에서 한.미 관계는 더욱 악화할 우려가 있고, 만의 하나 협상이 중도에 좌초하거나 실패할 경우 한.미 관계는 치명적 위험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다. 개방 갈등을 해소하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는 일은 친미-반미, 친정부-반정부의 구도를 넘어선다. 한 .미 모두의 윈윈 실현을 위한 국가적 지혜를 모을 때다.

변상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