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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셰일 원유 퍼내니, 유가 50달러까지 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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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가랑비에 옷 젖듯 조금씩 늘어난 미국 원유 재고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합의를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늘었다는 소식에 8일(이하 현지시간) 국제유가가 5%가량 급락했다. 여기에 셰일 원유를 앞세운 미국 산유량이 내년 사상 최대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더해지며 국제유가가 배럴당 50달러선 밑으로 떨어질 가능성도 커졌다.

원유보다 생산물량 조절 쉬워 #미국 산유량 내년 사상 최대 전망 #트럼프도 원유·가스 사업 부활 추진 #OPEC 감산 합의에도 유가 무기력

이날 미국 에너지부 산하의 에너지정보청(EIA)은 원유 생산이 올해 증가세로 돌아서 내년에는 1970년대 산유량 수준을 넘어선다고 발표했다. 미국 원유 생산은 1970년대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EIA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3일 미국 원유 재고(주간 단위 기준)는 S&P글로벌 플랫츠가 조사한 전문가 전망치(160만 배럴)를 훨씬 웃도는 820만9000배럴 증가한 5억2839만 배럴이다. 9주 연속 증가해 1982년 주간 원유 재고 통계를 집계한 이래 역대 최고 수준으로 쌓였다.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EIA)·블룸버그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EIA)·블룸버그

재고 증가의 배경에는 ‘셰일 유전’이 있다. 미국 최대 원유 매장지인 퍼미안 분지에서 나오는 셰일 원유 생산이 증산을 이끌었다. 이 지역의 유정 수는 지난해 4월 132개에서 현재 308개로 늘었다.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OPEC의 감산 합의가 이행되며 산유국이 일평균 100만 배럴 이상을 감산하며 원유가격이 배럴당 50달러선에 이르자 미국의 셰일 원유 채굴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셰일 원유는 전통적인 원유 채굴보다 생산 중단과 재개를 빠르게 할 수 있다. 마이크 위트너 소시에테제너럴 원자재 리서치대표는 “올 들어 OPEC 산유국들이 일평균 100만배럴 이상 감산한 이후에도 미국 원유 재고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게 데이터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OPEC의 감산 이행 합의와 미국 증산 소식이 정면충돌하자 원유시장도 흔들렸다. 미국 재고가 쌓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4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2.86달러(5.4%) 하락한 배럴당 50.28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일일 낙폭으로는 지난해 2월 이후 가장 컸고, 원유값은 지난해 12월 15일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한국에서 주로 수입하는 두바이유도 3개월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날 런던 ICE 선물시장의 5월 인도분 브렌트유 가격은 2.69달러(4.81%) 떨어진 배럴당 53.23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프랑스 최대 석유업체인 토탈을 이끄는 파트리크 푸야네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원유시장은 호재와 악재가 공존하고 있다”라며 “(원유) 재고가 줄어들지 않는 한 원유가격 변동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8일 시카고옵션거래소의 원유 변동성지수(VIX)도 전날 26.46에서 하루 만에 31.74로 19% 가까이 뛰며 시장의 불안감을 반영했다.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EIA)·블룸버그

자료:미국 에너지정보청(EIA)·블룸버그

국제유가의 심리적 지지선인 배럴당 50달러선도 위협받고 있다. 미국 경제방송 CNBC는 “미국 원유 재고가 9주 연속 증가해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는 소식은 (시장이) 아주 취약한 시점에 나왔다”라며 감산을 이행 중인 OPEC 공조 균열 등의 요소가 유가를 끌어내릴 것이라고 보도했다.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 사우디아라비아 칼리드 알-팔리 석유장관은 7일 미국 휴스턴에서 개막한 IHS케임브리지에너지연구소(CERA) 연례회의에 참석해 “감산 합의가 연장될지 여부는 결국 원유 재고가 얼마나 빨리 평균 수준으로 되돌아 가느냐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톰 클로자 오일프라이스 정보서비스 에너지분석 글로벌 대표는 “다른 산유국이 감산에 협조하지 않거나 속인다면 사우디가 언제든지 증산할 수 있다고 경고한 셈”이라고 분석했다. 사우디는 국영기업 아람코의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어 유가가 계속 하락하도록 내버려두기 어려운 상황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국제 원유시장의 와일드 카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침체됐던 원유·가스 사업을 부활시키고 있다. 키스톤 XL 송유관 재개와 다코타 엑세스 송유관 승인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고, 인프라 건설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한 환경 검토·승인 과정 간소화 등도 추진하고 있다. 원유 시추 기업에 더 많은 국유지를 제공해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다. 미국 최대 석유회사인 엑손모빌은 퍼미안 분지에 보유한 유전에서 셰일 원유 생산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엑손모빌은 성명을 통해 “올해 66억 달러를 주고 퍼미안 분지를 사들인 덕분에 현지 생산량을 하루 35만 배럴로 확대할 수 있게 됐으며 수십 년간 이 수준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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