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예수도 풍자하는데…" 이슬람 "무례하기 짝이 없는 짓"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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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 "표현의 자유일 뿐"=논쟁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프랑스 권위지 르몽드는 3일자 1면에 마호메트를 묘사한 만평을 크게 실었다. '나는 마호메트를 그려선 안 된다'는 작은 글씨로 그의 얼굴을 그렸다. 덴마크 신문에 비해선 점잖은 표현이지만 무슬림에게는 이것도 '불경'이긴 마찬가지다. 신문은 그러면서 "종교는 반드시 존중돼야 하지만, 또 자유롭게 분석.비판되고 조소의 대상도 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르몽드의 실비 코프만 편집부국장은 중앙일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만평 게재 이유에 대한 즉답을 피하고 "독자들은 우리 신문의 전체 메시지를 보고 사태를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면서 "표현의 자유와 종교적 관용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자문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독일 일간지 디벨트는 1일자 1면에 문제의 만평 중 '폭탄 터번'을 그린 것을 옮겨 실었다. 디차이트,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차이퉁, 슈피겔 등도 뒤를 따랐다. 디벨트의 로거 쾨펠 편집국장은 논평에서 "서구에선 기독교 역시 가차 없는 비판의 대상이 된다"며 "무슬림들의 요구는 지나친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일부 독일 언론들은 "이번 사태가 종교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일간지인 프랑크푸르터 룬트샤우는 "문제의 만평이 이슬람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다고 판단해 싣지 않았다"고 말했다. 로마 교황청도 "사상.표현의 자유가 종교적 감정을 훼손할 권리까지 부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 이슬람 "종교 모독 용납 못해"=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한 무장단체 하마스 지도부의 마무드 자하르는 4일 이탈리아 일간지 일지오날레와의 인터뷰에서 "이런 만평은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슬람권에서 마호메트 얼굴을 그리는 것은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 시위대는 이날 가자 지구의 유럽연합(EU) 사무소 앞에서 격렬한 시위를 벌이며 "우리의 피로 예언자 마호메트를 되찾자"고 외쳤다.

유럽 언론의 만평 게재가 이슬람에 대한 의도된 공격이란 주장도 있다. 덴마크 무슬림 사회의 지도자인 아메드 아부라반은 올 초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과의 인터뷰에서 "이 같은 만평 게재는 무슬림을 자극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행위"라고 주장했다.

◆ 어정쩡한 미국 입장=커티스 쿠퍼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사태와 관련, "우리는 언론.표현의 자유를 존중하지만 그것에는 책임이 따라야 한다"며 "종교.인종 갈등을 부추겨선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추가 논평에 나선 숀 매코맥 국무부 수석 대변인은 "표현의 자유는 생명.재산을 바쳐 쟁취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며 유럽 언론을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이는 이슬람권과 유럽 동맹국 모두의 심기를 거스르려 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베를린=유권하, 파리=박경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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