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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에 걸친 테일러 가문의 지극한 한국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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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할아버지·아버지의 묘소를 찾은 브루스 테일러(가운데). 왼쪽은 부인 조이스, 오른쪽은 딸 제니퍼.

66년 만의 귀향.

지난달 31일 푸른 눈의 노신사가 감회어린 표정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1919년 서울 세브란스 병원에서 태어나 종로구 행촌동에서 여섯 살까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미국인 브루스 테일러(87)였다. 이후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교육을 받은 테일러는 37년부터 대학에 진학하기 직전인 40년까지 3년여 동안 가족들과 함께 서울에서 살았다.

테일러에게 서울은 추억의 현장 만은 아니다. 금광기사였던 할아버지 조지 알렉산더 테일러는 평안북도 운산의 금광 개발에 손을 댔고, 1908년 조선 땅에서 숨진 뒤 서울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금광 엔지니어이자 UPI 특파원으로 활약했던 아버지 알버트 테일러는 3.1 운동의 실상과 의미 등을 세계로 타전하는 등의 일로 일제에 밉보여 42년 강제 추방됐다. 48년 미국에서 숨진 그의 유해는 본인의 유언에 따라 태평양을 건너와 양화진의 부친 옆에 나란히 묻혔다. 그의 이번 한국 방문은 할아버지.아버지와의 재회를 겸한 셈이다.

테일러의 한국 방문 일정은 빠듯하다. 할아버지.아버지의 묘소를 찾고 경기도 제암리 3.1 운동 순국기념관도 방문했다. 지금도 남아 있는 행촌동 자택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자신의 침대 밑에 독립선언서 일부가 숨겨졌었던 사연을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시는 6일 3대에 걸쳐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은 테일러에게 명예시민증을 수여한다. 테일러의 이야기는 KBS의 3.1절 특집 다큐멘터리 '아버지의 나라'로 만들어져 방송될 예정이다.

한편 영화제작자인 테일러의 딸 제니퍼 테일러는 할머니 메리 테일러의 자서전 'Chain of Amber(호박(琥珀) 목걸이)'를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 중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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