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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여객선 침몰 … 사망·실종 1000여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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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집트로 가던 중 침몰한 여객선에서 구조된 승객들이 4일 이집트 사파가항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파가 로이터=연합뉴스]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홍해에서 3일 발생한 여객선 '알살람 보카치오 98호' 침몰사고의 사망.실종자가 10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이집트 당국은 5일 현재 380명의 생존자를 구조했으며 200구 이상의 시체를 인양했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800여 명은 실종됐다. 사고 여객선에는 승무원 97명과 승객 1318명 등 모두 1415명이 타고 있었다.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과 AFP통신, BBC방송 등 외신이 전한 생존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참사 당시를 재구성했다.

평생을 원하던 메카 성지순례(하지)를 마치고 3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고국인 이집트로 돌아오던 무하마드 압달라(41.공무원)는 홍해를 건너는 배 안에서 무언가 타는 냄새를 맡았다. 오후 7시 사우디아라비아의 두바항을 떠난 지 두 시간 남짓 지났을 무렵이었다. 이윽고 배에는 연기와 냄새가 진동했다. 승무원들은 "엔진에 작은 문제가 있어 수리 중"이라며 "걱정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답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다 귀국길에 오른 아메드 압델 와하브(30.노동자)도 승무원들에게 "되돌아가 도움을 요청하자"고 제안했지만 승무원들은 "불길이 잡히고 있다"며 이를 묵살했다. 이때 배는 사우디에서 32㎞ 떨어진 해상을 항해 중이었으며 이집트까지 176㎞를 남기고 있었다.

압달라는 차츰 불길이 퍼지면서 배가 조금씩 기우는 것을 느꼈다. 승객들은 공포에 질려 배가 기운 반대편으로 몰렸다. 그런데도 승무원들은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 승객 압델 라우프 압델나비는 다른 승객들과 함께 구명조끼를 입으려 했지만 승무원들이 다가와 "괜한 공포심을 불러온다"며 이를 제지했다.

배는 한참 기울어진 상태로 두 시간 이상 계속 항해하다 갑자기 옆으로 넘어졌으며 5분도 못 돼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승객 리파트 사이드(34)는 배가 넘어지는 순간 시계를 봤다. 시계는 4일 오전 2시를 조금 넘고 있었다.

쿠웨이트에서 일하다 이집트로 귀국하던 사예드 압둘 하킴(32)은 배가 가라앉기 직전 영화 '타이타닉'을 떠올렸다. 승무원들은 구명보트를 준비하지도 않았으며 승객들에게 사용법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기울어지는 배에서 떨어진 그는 물에 빠지는 순간 "이제 마지막이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을 가족 생각에 세 시간 동안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마침내 고무보트를 발견해 기어올랐으며 18시간 뒤 구조됐다.

압달라는 배가 침몰하는 순간 친구들과 함께 바다로 뛰어내렸다. 정신 없이 헤엄쳐 구명보트에 올랐지만 성지순례를 함께한 친구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50명이나 올라탄 비좁은 구명보트에서 담요로 체온을 유지하며 22시간을 버틴 끝에 이집트 구조대에 발견됐다. 여객선이 출발한 지 만 하루가 지난 뒤였다. 아랍무술 지도자인 와하브는 20시간 동안 바다에 있었다. 처음에는 빈 통(배럴)을 안고 버텼으나 도저히 추위를 견딜 수 없어 떠다니는 시신에서 구명조끼와 옷을 벗겨 입었다.

박소영.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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