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소주 홍수 속 여성 고위험 음주율 증가세 심상찮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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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기자]

중년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던 소주가 젊은 여성에게 보다 친근한 모습으로 바뀌고 있다. 주류회사는 기존의 ‘쓰고 맛없던’ 소주 대신 유자맛, 자몽맛 등을 첨가한 소주를 앞 다퉈 출시했다.

소주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든 만큼 주류 소비도 늘었다. 덩달아 고위험 음주율도 늘어나는 모양새다. 특히 젊은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이 두드러졌다.

실제 보건복지부의 국민건강영양조사에 따르면 2014년 기준 고위험 음주율은 13.5%로, 남성(20.7%)이 여성(6.6%)에 비해 3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위험 음주는 한 번에 남성은 소주 7잔 이상, 여성은 소주 5잔 이상씩 일주일에 두 번 이상 마시는 것을 일컫는다.

남성의 고위험 음주율은 2011년 23.2%에서 꾸준히 감소해 2014년 20.7%까지 낮아졌다. 반면, 여성은 같은 기간 4.9%에서 6.6%까지 늘었다. 시중에 과일향 소주가 본격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2014년 들어 고위험 음주율이 전년도 5.4%보다 1.2%p나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매년 여성의 고위험 음주율이 증가하지만 여성을 위한 금주 정책은 찾기 힘들다. 여성의 특성을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여성의 경우 남성보다 체지방 비율은 높고 수분 비율이 낮아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게 올라갈 수 있으며 알코올 분해효소 역시 더 적어 빨리 취하게 된다. 같은 양의 술을 마셔도 알코올 질환에 노출될 위험이 더 크다는 뜻이다.

또한 알코올은 생식기능에도 영향을 미쳐 무월경이나 불임, 유산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 폐경기 여성들에게 음주는 유방암이나 골다공증의 위험을 높이는 요인으로 꼽힌다.

보건복지부 지정 알코올 질환 전문 다사랑중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허성태 원장은 “여성은 음주 자체를 즐기는 남성과 달리 스트레스나 우울감 등 정서적인 문제로 술을 마시다 중독에 빠지거나 우울증, 불면증, 불안증 등의 동반질환을 갖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허 원장은 “그러나 사회적 비난과 편견 등으로 방치되거나 스스로 문제를 은폐하는 환자가 대부분”이라며 “단순히 술을 끊는 것만이 아니라 여성이 술을 마시게 된 이유를 이해하고 심리적 치료 등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족들의 이해와 지지도 당부했다. 허 원장은 “여성 알코올중독 환자는 가족으로부터 비난받을까 두려워 몰래 숨어서 술을 마시고, 가족 역시 문제를 외면하거나 방치하는 경향이 있다”며 “주변에서 심각성을 깨닫고 병원을 찾았을 때에는 이미 상태가 악화됐을 가능성이 큰 만큼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원장은 “여성의 알코올 문제는 보다 섬세하게 접근해야 하므로 병원을 선택할 때에는 여성의 심리상태나 성향 등을 고려한 전문 치료 프로그램과 환경이 제공되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며 “세계 여성의 날(8일)을 맞아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여성 알코올중독 문제에 관심을 갖고 국가적 차원의 지원이 확대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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