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찾습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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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내년도 예산안을 심의중인 국회에서는 요즘 전에 볼 수 없던 해괴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평소같으면 발언권을 서로 얻으려고 다투던 의원들이 입을 다물어 위원장이 질의를 권유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회의를 여는데 필요한 의원 숫자를 못채원 의원을 찾느라 직원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뛴다.
각 상위나 예결위는 3분의1의 개의정족수를 채우기 위해 의원들을 기다리느라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시작되는 것이 보통이고, 심지어 21일 예결위의 경우 50명중 13명만 참석했는데도 아예 정족수를 무시한 채 개의하기도 했다.
일단 회의를 시작했다가도 안건을 의결할 때면 과반수의 의결 정족수를 맞추느라 긴급 「의원수배」소동이 벌어지기 일쑤다.
20일 상공위에서는 결산 의결 때 자리를 뜬 S의원을 직원들이 휴게실로, 의원실로 찾아다녔고 재무외에서는 정족수 채우기가 불가능하자 아예 결산처리를 하루 미루었다.
모처럼 정족수를 채운 모상위에서는 떡본 김에 제사지내자는 생각이었는지 예정에 없던 안건까지 통과시켜 정부측이 『편하게 됐다』고 좋아했다.
17조5천억원이라는 방대한 새해 나라살림에는 의원 누구도 관심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선거때문에 예산심의기간이 예년보다 반으로 줄었는데도 의사당 어느 곳에서도 예산안을 진지하게 따지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정기국회 개회초부터 보인 이런 현상을 되풀이 말자고 국회의장이 누누이 당부하기도 했지만 명예회복의 기미는커녕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국회의 회의나 예산심의는 의원들이 하고싶으면 하고 싫으면 안해도 그뿐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의원들의 책임이며 임기초에 의원 스스로 『국회의원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겠다』 고 선서한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선거가 바빠도 체면과 정도가 있어야지 국회를 의원 스스로 팽개쳐 희화 거리로 만든대서야 말이 안되는 일이다.
박보균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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