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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중국 사드 보복 작년 10월에 알아…대응미숙 비판 일 듯

중앙일보

입력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인한 중국의 무역 보복을 정부가 지난해 10월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는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이후부터 정부는 중국의 보복은 없다는 공식 입장을 고수해왔다.


사드 보복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한 건 보복이 노골적으로 이뤄진 최근의 일이다. 6일 시사인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업무일지를 인용해 정부가 중국의 사드 보복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0월 8일 자 안 전 수석의 업무일지에는 사드와 관련한 중국의 동향과 대응 방안이 적혀 있었다.

‘VIP(대통령) 지시’라는 표시도 있었다.
업무일지의 내용은 이렇다.

1. ‘LG, 삼성 배터리 중국 방해
행정지도
외국기업은 인정
2. 외교라인 ? 중국 지도부 보복의지 감지
중국 기업 압박해서 한국산 사지 마라.
총리, 산업장관 노력 무위
근본적으로 법적으로 해결
WTO 제소
Ex) 훙샹그룹 미국이 제기는 OK
기업 불이익 사례 수집+기업 대처
→ 언론 → WTO 제소
다만 중국 국민과의 우호는 유지

업무일지가 작성될 당시 국내 전기차 배터리 업체 3사(LG화학ㆍ삼성SDIㆍSK이노베이션)는 중국 정부의 인증이 늦어져 전기차에 배터리 탑재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당시에도 사드 배치에 대한 보복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중국과 한국 정부가 사드 보복을 부인해 단지 중국 기업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역차별이란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우리 정부는 이때 외교라인을 통해 사드 보복을 감지하고 대응책을 논의한 것으로 업무일지를 통해 확인된다.


안 전 수석이 기록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 내용에는 기업 불이익 사례를 수집해 언론을 통해 여론화하고 WTO(국제무역기구)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했던 것으로 보인다. WTO 제소 방안은 최근에야 정부가 언급하는 대응책 중 하나다.


이처럼 구체적인 대책 논의까지 할 정도로 향후 보복에 대한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 같은 동향을 축소하거나 숨기기에 급급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사드 배치 결정을 한 직후인 지난해 7월 19일 “한ㆍ중 관계가 고도화돼 쉽게 경제 보복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려의 소지는 크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같은 해 8월 5일 정진석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시중에 떠도는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은 중국 지도부의 한반도 정책과 배치되는 이야기”라며 “저는 지금의 중국 지도부가 정경 분리 원칙 하에 신중하게 움직일 것으로 알고 있다”고 호언장담했다.

이후 보복 징후가 깉어진 뒤에도 정부는 확대 해석을 일축했다.

윤병세 외교장관은 지난해 9월 26일 “비공식이든 공식이든 이것이 경제 보복이라고 얘기하기는 아직 상당히 이르다”고 말했고,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는 청와대에서 대책 논의를 한 이후인 10월 10일에도 “이런저런 말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렇게까지 우리가 크게 우려할 사항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보복성 조치가 확대되던 지난해 12월 20일에도 “중국이 직접적인 무역 보복 같은 조치를 사드 배치 때문에 하기는 조금 제한적이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희들의 판단”이라고 했다. 발언 그대로라면 판단이 서툴렀거나, 이미 알고 있었다면 사실을 숨긴 셈이 된다.


정부는 지난 1월에야 추궈훙 주한 중국 대사를 불러 사드 보복에 대해 항의하는 등 부랴부랴 대응에 나서면서도 “중국 관광객이 전년보다 증가할 것”(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이라거나 “(사드 배치와) 연결 고리가 없다”(유일호 부총리)는 식으로 중국의 보복에 대한 각계의 분석과 지적을 과장으로 일축했다.

이처럼 보복 징후를 감지하면서도 의미를 축소한 배경에는 중국 정부가 한국 기업 활동에 대한 행정적 제재를 사드와 별개 사안으로 못박은 것도 한몫 한다.

그렇다 해도 사태를 축소하고 수개월 동안 대응책을 내놓지 않았던 정부의 안이한 태도가 중국과 갈등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게 됐다.

정부와 여당(자유한국당)은 7일 당정회의를 열어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한 대응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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