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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의 대공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뉴욕증시를 비롯한 세계주요증시에서의 연 이틀째 주가폭락은 엄청난 낙폭도 그렇지만 주변여건이 1929년 대공황 때와 「기분 나쁠정도」로 유사하다고 주장하는 부가로 나오고 있다.
1차대전의 전쟁특수 이후 공급과잉 상태에 빠진 상품들은 값이 크게 떨어졌고 마땅한 투자처를 잃은 미국의 과잉유동성은 실물보다는 금융투자 쪽으로 대거 몰러 20년대의 미국증시는 급속한 상승커브로 치달았다.
당시 금리를 비롯한 금융정책의 판단미스로 기업의 생산을 위한 설비투자는 이뤄지지 않은채 주식매입을 위한 대출만 급증했다.
은행이나 기업은 여유자금을 모두 주식매입에 빌려줬고 개인들도 예금을 헐어 주식 사재기에 나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뉴욕증시의 다우존즈 주가는 29년9월3일 피크를 기록했다.
유럽의 중앙은행들이 이 자금의 흡수를 위해 재할인율을 인상하자 불안을 느낀 일부 투자가들이 주식을 정리하기 시작하면서 주가는 서서히 하강국면으로 진입했다.
그 해 10월들어 주가하락에도 불구하고 주식매입 대부자금은 68억달러로 사상최고에 달했다. 파탄은 29년 10월24일 목요일에 왔다. 엄청난 투매 속에서 1천3백만주에 육박하는 사상최고의 거래가 이뤄졌고 주가는 곤두박질했다. 증시에 깊숙이 개입된 은행과 기업들이 잇달아 대량 쓰러졌다.
29년9월 시가 총액으로 9백억달러에 이르렀던 뉴욕증시의 상장주식 가격은 32년7월 1백60억달러로 떨어졌다. 국민총생산은 29년1천40억달러에서 33년5백60억달러로 반감,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는 치명타를 입었다.
그것이 지금도 「악몽」으로 기억되는 1929년 대공황이었다. <박태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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