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시민마이크] 연금생활 70대, 30만원 버거워 치매남편 장기요양 포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치매환자 100만 시대 <중> 

“내가 몸까지 여기저기 아파. 사는 게 너무 너무 힘들어요.”

정부지출 3년 새 2배로 늘었어도 #빈곤 노인 본인부담 여전히 큰 짐 #간병·요양서비스 상당수가 못 받아 #치매 환자 대신 욕창약 처방 요구에 #"본인 데려오라”해 앰뷸런스 불러

지난달 27일 서울 강서구의 한 상가주택 월세방. 치매 환자 A씨(여·78)가 담당 사회복지사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 A씨는 2013년 3월 치매 진단을 받았다. 기초생활수급자에게 인지장애가 있어 간병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사실상 방치돼 왔다. A씨는 매월 기초생활수급비 100만원을 받아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의 요양병원비(50만원)와 월세(35만원)를 낸다. 손자 3명까지 부양하고 있어 A씨까지 네 명의 식구가 한 달에 1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해야 한다. 지난겨울은 주민센터에서 지원한 쌀 두 포대로 버텼다. A씨는 지난해 12월에야 정부가 지원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수급자(4등급)가 됐다. 정부 지원금으로 요양보호사가 매일 3시간30분씩 A씨를 간병하고 집안일을 도와준다. 강서치매지원센터 정지현 사회복지사는 “집집마다 찾아다닐 수 없어 사각지대에 놓인 치매 어르신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재 치매 환자가 기댈 수 있는 대표적 복지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노인장기요양보험이다. 등급 심사(1~5등급)를 거쳐 대상자로 선정되면 본인 부담금(15~20%)을 내고 방문 간병 서비스나 요양원 비용을 지원받을 수 있다. 2015년 장기요양보험 수급자는 47만 명. 전체 치매 노인 수(64만 명)에는 훨씬 못 미친다. 그런데도 장기요양보험 지출은 2013년 2조830억원에서 지난해 4조4176억원으로 급증해 올해 5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사각지대가 생기는 건 불가피하다. 취재진이 지난달 16~28일 만난 7명의 치매 환자 가족들도 한목소리로 간병비 부담을 호소했다. 장기요양보험 제도에서 치매 환자의 자택으로 요양보호사가 방문하는 재가(在家) 서비스는 하루 3~4시간 이용할 수 있다. 나머지 시간은 가족들이 직접 간병하거나 인력업체에서 간병인을 고용하고 있다. 24시간 돌봄을 제공하는 요양원은 중증 환자가 아니면 입소하기 어렵고 본인 부담금도 50만~100만원 이상으로 비싼 편이다.

지원 대상인지 몰라 3년간 치매 방치도

서울 중랑구 묵동에서 치매 남편(77)을 홀로 간병하는 B씨(71)는 장기요양보험을 포기했다. 5년 전 치매 진단을 받은 남편은 3등급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 B씨 부부는 군인 출신인 남편 앞으로 매달 나오는 군인연금 140만원이 소득의 전부다. 시설에 입소하거나 방문 요양을 신청하려면 본인 부담금 30만원을 내야 했다. 그러고 나면 두 사람 생활비가 빠듯해져 B씨가 홀로 간병하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엔 남편을 목욕시키다 넘어져 골절상을 입기도 했다.

관련기사

중증 치매 아내를 간병하는 C씨(70) 역시 한 달에 간병비로 180만원을 쓰고 있었다. 12년째 치매를 앓고 있는 아내는 현재 거동을 전혀 하지 못한다.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하지만 현행 장기요양보험 제도로는 하루에 4시간 이상 요양보호사를 지원받지 못한다. 요양원·병원에 보낼까도 했지만 포기했다. C씨는 “시설은 6~7명의 환자를 간병인 한 명이 돌보기 때문에 중증인 아내가 가면 얼마 못 버틸 것 같았다”고 했다.

이러다 보니 치매 환자가 생기면 가족 전체가 경제적 부담 때문에 빈곤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2015년 기준 초기 치매의 연간 치료·관리비는 1484만원에 달했다. 중증 치매가 되면 비용은 3187만원으로 올라갔다. 늦게 발견할수록 비용이 더 든다는 의미다. 지난해 한국 노인들의 상대적 빈곤율은 49.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12.6%)의 4배에 이른다. 정지향 이대 목동병원 신경과 교수는 “궁극적으로 치매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야 노인 빈곤율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각종 규정도 치매 환자 가족을 괴롭힌다. 욕창 치료연고나 습진약을 처방받는 절차가 대표적이다. C씨는 최근 아내를 위해 욕창 연고를 처방받으려고 동네 외과병원에 갔다 퇴짜를 맞았다. 병원은 “현행 의료법상 대리처방은 불가능하다. 환자가 직접 와야 한다”고 했다. C씨는 “의식 없이 누워 있는 환자를 연고 하나 타자고 병원에 데려오라는 게 말이 되느냐”며 “환자에겐 가족요양이 제일 나을 텐데 제도가 돕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결국 왕복 6만원을 들여 사설 앰뷸런스로 병원에 다녀왔다”고 했다.

치매 등급을 받는 것도 환자 가족에겐 고역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5년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며느리 D씨(48)는 “치매등급을 받아야 주·야간보호센터에 갈 수 있는데 등급은 의사 소견서로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치매라는 의사 소견서는 첨부일 뿐 결국 건강보험공단 직원들이 다시 와서 진단하고 등급을 심사해야 하는 등 과정이 번거롭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이동현(팀장)·김현예·이유정 기자·조민아(멀티미디어 제작)·정유정(고려대 3년) 인턴기자 peoplemic@peoplemic.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