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4차 산업혁명보다 ‘인재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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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양성모볼보건설기계 부사장

양성모볼보건설기계 부사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가별 언어·수학 문제 해결 능력을 연령대별로 조사한 결과를 보자. 한국 청소년들(15세 이하)은 핀란드·스웨덴 청소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꾸준히 최상위권을 차지해 왔다. 한국 청소년들은 수학과 과학 올림피아드에서도 매년 좋은 성적을 거둔다. 이는 한국 미래의 경쟁력이 높은 수준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기대하게 하는 매우 고무적인 결과이다.

하지만 다른 연령대로 가보면 전체 그림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다. 순위권 내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연령대가 올라갈수록 그 능력이 급격히 감소한다. 특히 35~45세에선 OECD 평균을 하회하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20~30대 청년층의 인적 자본 저하율도 OECD 국가 중 심한 편이다. 우리의 국가 경쟁력이 심히 우려되는 지표들이다.

이 조사 결과를 보고 2015년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에 게재된 한국 기업문화에 대한 기사가 다시 떠올랐다. 기사에 따르면 기업 성장기엔 상급자의 경험과 지식을 그저 열심히 따르면 되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국과 같이 성장이 정체된 과도기의 비즈니스 환경에서 업계의 새로운 리더로 자리매김하려면 혁신의 근간이 되는 창의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국내 대기업도 최근 저성장과 고령화 등의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유연한 고용 및 기업문화를 위한 변화가 시급함을 시사한다.

필자가 몸담은 회사의 기업 문화를 사례로 들어보자. 볼보그룹은 사회주의적 색채가 강한 스웨덴의 전반적인 제도와 분위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소속된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참여하는 토론에서 투명하게 도출된 결과를 중시한다. 회사 내 임원을 선발하는 과정도 ‘사내 채용 공지 제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명시된 자격 요건을 갖추었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공정하고 투명한 참여 및 선발 과정으로 선임된 임원은 근무 연한에 따른 선·후배 그룹과 관계없이 조직 내에서 존중과 기대를 받으며 업무에 임하게 된다. 조직 내 젊은 세대에게는 공정한 기회가 주어지면서 새로운 도전에 대한 동기 부여가 된다. 경험을 갖춘 선배 세대에겐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지속적인 혁신을 거듭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연공서열과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문화에 기반해 근무 기간에 따라 승진의 대상이 되는 제도와는 사뭇 다르다.

인재가 최고의 자산인 한국의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단순히 오락가락하는 경제성장률 수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특히 기업 단위에서 창의적인 조직 문화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한민국 국가경쟁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창의적인 조직 문화와 공정한 경쟁을 근간으로 하는 ‘인재 혁명’이야말로 4차 산업혁명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최우선 과제다.

양성모 볼보건설기계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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