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북한 위폐 증거 확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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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파트를 총괄하는 이 당국자의 언급은 '위폐 문제를 심각히 우려하고 있다'는 정부의 기존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지난해 가을 위폐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졌을 때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고위인사들은 사실 확인과 증거가 필요하다며 유보적 입장을 취했다. 그러다가 국정원이 90년대 말 위폐 제조.유통 관련 정보를 국회에 보고했다는 사실이 본지 보도(2005년 12월 23일자)로 알려지자 '우려' 쪽으로 입장을 바꿨다.

이번 국정원 보고는 미국 측이 북한 위폐 문제와 관련해 증거를 확보한 사실을 우리 정보당국이 '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정부가 자체적으로도 위폐 제조.유통 혐의를 '추적' 중에 있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전까지는 "분석.평가하고 있다"는 정도에 그쳤다. 이 때문에 지난달 방한한 미 재무부 등 위폐 전문가들이 국정원에 '부인하기 힘든 증거'를 제시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번에 미국이 제공한 정보를 토대로 정보기관이 '증거 있음' 쪽으로 옮겨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조심스레 내놓는다.

국정원 당국자는 정보위 소속 한 열린우리당 의원이 "미국이 지금 위폐를 거론하는 것은 6자회담을 깨뜨리려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런 것은 아니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증거가 있어 발표한 것인데 "마침 시점이 묘하게 된 것일 뿐"이란 설명이다. 당국자는 그러면서도 "6자회담을 앞두고 북한 압박용이라는 양면성은 있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고 참석자는 전했다.

국정원은 그러나 위폐 문제가 가져올 파장을 우려한 때문인지 1시간40분간의 회의 내내 조심하는 빛이 역력했다고 참석자는 귀띔했다. 김승규 원장은 보고에서 "북한이 94년과 96년, 98년 위폐 유통으로 검거된 적이 있다"고 했다. 그렇지만 초미의 관심사인 제조 여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99년 국감 때 "2월은빛무역 등 세 개 위폐 제조기관을 운영하고 있다"며 사실상 제조 사실을 확인했던 데서 슬쩍 발을 뺀 것이다. 일부 정보위 여야 의원은 위폐 관련 정보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자료를 감추는 게 아니냐"고 다그쳤다. 또 한 여당의원은 "98년 이후 위폐 유통이 없었다면 지금은 없는 것 아니냐"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영종.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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