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고교 졸업장도 없는 라이트 형제 … 800m 비행 뒤의 열정과 몰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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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라이트 형제
데이비드 매컬로 지음
박중서 옮김, 승산
502쪽, 2만원

형 윌버(1867~1912)와 동생 오빌(1871~1948)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형제다. 1903년 12월 17일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키티호크의 모래언덕에서 ‘동력을 이용해 공기보다 무거운 물체를 조종하고 지속적으로 첫 비행’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전기 작가인 지은이는 이들 라이트 형제의 위대함은 결과보다 과정에 있다고 강조한다. 과정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4년간 격렬한 폭풍, 연이은 실망, 대중의 무관심과 조롱, 그리고 마귀처럼 지독하고 구름처럼 무수했던 모기떼를 견디며 키티호크의 바닷가에서 비행 실험을 했다. (집이 있는) 오하이오와 이곳을 다섯 차례 오갔다. 모두 합쳐 1만1000㎞를 기차로 이동했다. 그 결과가 모두 합쳐 800m가 조금 넘는 시험 비행 성공이었다.” 수천 번의 지리한 실험 끝과 끈질긴 개량 끝에 이룬 결과였다.

지은이는 불굴의 의지와 신념, 부단한 지적 관심과 호기심야말로 업적을 일군 ‘진짜 동력원’임을 역설한다. 1000통이 넘는 형제의 편지와 사진 등 1차사료가 바탕이 됐다. 지은이는 형제의 ‘영명함’보다 이들을 이렇게 담금질한 이력에 무게를 둔다. 고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형제는 1893년 오하이오주 데이튼의 집 근처에 자전거 판매와 수리포를 열였다. 형제는 밤낮으로 자전거에 푹 빠졌다. 자전거포 시대는 비행기 시대의 거름이 됐다. 기울어지는 자전거를 그 방향으로 계속 달리게 하면 자세가 바로 잡하는 원리는 비행기 조종에도 응용됐기 때문이다.

1895년에는 2층 건물로 가게를 옮겨 1층은 전시실로 쓰고 2층에선 자체 모델 자전거를 주문 제작했다. 사업은 번창했다. 여기에 머물렀으면 항공 시대는 연기됐을 것이다. 결정적인 기회는 호기심 청년에게 먼저 찾아왔다. 1896년 장티푸스로 장기간 침상 신세를 지던 오빌이 독일 활공기(글라이더) 연구가 오토 리리엔탈을 다룬 기사를 봤다. 감동한 형제는 삶 자체를 비행기에 몰입했다. 교사로 일하던 여동생 캐서린까지 나서 형제를 도왔다. 형제의 공동작업과 가족의 따뜻한 관심은 인류사의 큰걸음에 윤활유가 됐다. 진보란 결국 인간이 하는 일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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