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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독일처럼 저항권을 헌법에 명시해 … 국민이 집권자 위법행위 경고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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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헌법은 살아있다』 펴낸 이석연 변호사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와 대통령 탄핵심판은 국민들의 헌법 의식을 고취시키는 학습의 장이 될 겁니다. 불행 중 행운이지요.”

탄핵심판, 헌법 의식 고취시켜 다행 #재판 늦어지면 정상적 헌정 힘들어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 만들어야

지난 16일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서울’ 사무실에서 만난 이석연(63) 변호사는 최근의 혼란에서 본 역설적 희망을 이야기했다.

헌법전문가는 촛불집회를 보고 펜을 들었다고 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대한민국 헌정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헌법전문가는 촛불집회를 보고 펜을 들었다고 했다. 이석연 변호사는 “지금은 혼란스럽지만 대한민국 헌정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김경록 기자]

촛불집회에 시민들이 들고나온 피켓에 적힌 대한민국 헌법 1조는 그에게 희망으로 다가왔다고 한다. 이 변호사는 “국민들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고 외치면서 스스로가 이 나라의 주인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이다. 촛불집회에서 비롯된 탄핵은 헌정 중단도, 혁명도 아닌 정당한 저항권의 행사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독일처럼 저항권을 헌법에 명시해 집권자의 위헌ㆍ위법한 국정운영을 결코 용납하지 않겠다는 국민의 경고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나온 자신의 책 제목을 『헌법은 살아있다』로 정한 이유를 “헌법이 국민들의 의식 속에 생활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국회의 대통령 탄핵안 의결 이후 우리 사회의 지향점에 대해 “헌법이 지배하는 사회다”고 말했다.

책을 낸 직접적 계기는.
“촛불집회를 보고 ‘아 이게 헌법의 시대구나’라는 생각에 집필을 서둘렀다. 촛불집회로 헌법의식이 높아진 국민들에게 헌법은 장식물이 아닌 생활규범이고 헌법의 주인도 국민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
‘생활규범’은 무엇인가.
“생활 속에 살아있는 규범이라는 뜻이다. 간통죄 위헌 결정, 호주제와 동성동본 금혼제도 위헌 결정 등(그는 이 책에 ‘한국 사회를 바꾼 10대 위헌 결정’을 소개했다)은 우리의 전통적 가족생활과 윤리의식을 뿌리부터 바꾸지 않았나. 헌법은 공기나 물처럼 우리 생활의 틀을 형성하는 규범이다.”
탄핵 국면에서 떠오른 위헌 결정은.
“1993년 국제그룹 해체 위헌 결정은 권력이 민간 기업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명확히 했다. 전두환 정권이 종업원 4만 명의 회사를 공중분해시킨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었다. 정권은 ‘대통령의 통치권적 결단’이라고 주장했지만 헌법재판소는 ‘법은 만민 앞에 평등하다. 대통령도 법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고 선언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다시 대통령이 사기업에 의무 없는 일을 강요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서 착잡했다.”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해결할 길은 없나.
“제왕적 대통령제(5년 단임제)를 바꿔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는 형성됐다. 의원내각제가 이상적이지만 ‘권력분산형 4년 중임제’가 실현 가능하고 국민들이 원하는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처럼 감사원은 국회로 보내고, 부통령에게도 일부 권한을 주는 게 뼈대다. 권력구조 개편은 결과보다 그 과정이 ‘국민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축제의 장’이 돼야 의미가 있다.”
새 헌법에 추가되어야 할 다른 것은.
“‘정보화 기본권’ 등 시대 변화에 따라 명문화해야 할 기본권들이 있다. 또 ‘수도는 서울, 국기는 태극기, 언어는 한글이다’ 같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조항도 명시해 정치적 논란을 차단해야 한다. 과반 득표에 이르지 못한 1, 2위 후보를 두고 치르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대통령의 민주적 정당성을 강화해야 한다.”

우리나라 1호 헌법연구관이었던 이 변호사는 94년 개업 이후 공익소송과 헌법소송에 매달렸다. 제대군인 가산점제도, 행정수도 이전법 등 30여 건의 위헌결정을 이끌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법제처장 시절에는 ‘정부 내 야당’ 역할을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문제가 사회적 논란이 된 2008년 6월 “국민 건강과 직결되는 한ㆍ미 쇠고기 합의를 법령이 아니라 법제적 심사도 거치지 않은 장관 고시로 시행한 것은 헌법적 문제가 크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역대 대통령의 실책은 직언을 받아들이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말했다.

최근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멘토 그룹에 합류했다는 보도에 대해 그는 “인생의 멘토로 삼겠다는 남 지사에게 ‘멘토까지는 아니고 서로 상의하자’고 했던 게 와전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너진 공동체적 연대를 회복하는 데 기여할 길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글=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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