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기자]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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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던 황우석 교수 논문 조작 사건은 이제 검찰로 넘어가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황 교수 사건이 점차 실체를 드러내면서 가장 걱정이었던 부분은 이로 인해 우리 이공계가 국제적으로 받을 타격이었다. 신문과 방송매체에서는 이번 일 때문에 과학계가 피해를 많이 입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 하다. 특히, 이제 막 학계로 진출하려는 젊은 과학도들이 체감하는 분위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싸늘한 것으로 나타났다.

손 모씨(33)는 지금 미국 대학원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그녀는 이번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인한 파장을 단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한국 유학생들이 부끄러워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그녀는 생명공학과 연계된 쪽에서 공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주변 외국인 교수나 동료들에게 심심찮게 이번 일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할 말도 없고 얼굴도 화끈거린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진짜 문제는 따로 있었다. 황우석 교수 사건으로 인해 타지에서 받는 질책어린 시선이 유학생들의 사기를 많이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특히, 외국 학계에서 받는 눈총이 생각보다 따갑다고 한다. 물론 그들이 이런 시선들을 대놓고 보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가끔씩 세미나에서 만나는 외국 학자들의 말없는 질책을 느낄 때마다 몸이 움츠러드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한국 학자들이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유명 과학저널에 논문을 제출하기가 더욱 어려워질 것 같다고 걱정했다.

실제로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도시공학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정 모씨(26). 그녀는 이번 석사 논문을 외국의 모 학술지에 게재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쉽게 실릴 수 있을 것 같던 논문에 갑자기 ‘태클’이 걸렸다. 지금까지 별 의심을 보이지 않았던 저널 측에서 ‘잠시 검토해 보겠다’며 게재를 미룬 것이다. 정 모씨는 ‘SCI급(주로 과학 분야에 관련된 저널 중 싸이언스나 네이처 등과 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학술지를 통칭하는 등급) 학술지도 아니라서 통과하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게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황우석 교수 파문이 있은 후 정부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세계 생명공학의 허브가 되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고 과학계가 피해를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현재 어려운 상황에서도 꾸준히 연구를 계속해서 성과를 내고 있는 연구자들도 많다. 하지만 현재 일선에서 뛰고 있는 젊은 이공계생들은 ‘현재 우리가 해외에서 느끼는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지금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정부의 좀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하고 있다. [손동우 / 연세대학교 도시공학과]

(이 글은 인터넷 중앙일보에 게시된 회원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중앙일보의 논조와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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