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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본전도 못 건지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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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 놈! 금리야.

네까짓 것이 더 내려가려고 제아무리 발버둥질을 쳐봐야 소용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겠느냐.

뭐라? 불황이 심하니 금리를 낮춰 경기를 부추긴다? 그래, 5월에 이어 7월에도 0.25%포인트씩 두 번이나 콜금리 목표치를 낮춘 결과가 무엇이냐. 기업이 투자를 늘렸느냐, 사람들이 지갑을 열었느냐.

되레 알량한 퇴직금 넣어 놓고 이자로 살아가던 사람들만 더 풀 죽게 만들지 않았느냐. 언제는 소비만이 살 길이라며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고 신용카드를 마구 안기더니, 이제는 이자 수입마저 싹둑 잘라가고 소비가 살아나기를 바라느냐.

요즘 기업이 투자를 꺼리고 상점이 썰렁하고 빈 택시가 줄을 서는 게 금리가 높아서인줄 아느냐. 또, 금리만 낮으면 뭉칫돈이 순진하게 증시로 몰릴 줄 알았단 말이냐.

네 이 노옴! 예산아.

너도 경기를 부추기려고 나랏돈 4조5천억원을 더 쓰기로 했으렷다? 아니, 언제 시중에 돈이 모자라 불황이 닥쳤다고 하더냐, 아니면 정부 예산이 쓰일 곳에 덜 가서 경기가 이 모양이라 하더냐.

그 4조5천억원도 말이 좋아 사회간접자본 투자지 실제로는 길 닦는 일에 가장 많은 돈을 들이면서, 그런 일로 기껏 0.5% 더 성장해봐야 무슨 큰 이득이 있겠느냐. 지금 도로가 부족하고 도로 공사판 일자리가 모자라서 이리도 경제가 어렵다더냐.

게다가 당장 4조5천억원을 마련할 길도 없어 내년 예산에 잡힐 돈을 미리 끌어다 쓰는 것이라니 추가경정예산이 아니라 가불(假拂) 예산이로구나. 그럼 내년 예산은 어찌 짜려느냐.

경제가 정 어려우면 금리를 내리고 예산을 늘리고 할 수도 있으렷다.

그러나 그건 과거처럼 금리가 10%대에서 놀고 때로는 재정 긴축에도 들어가보고 할 때의 얘기지, 지금 경제 어려운 것이 정녕 금리.재정으로 풀릴 상황이라고 판단했단 말이더냐?

대체 무엇이 지금 경제를 어렵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 왜 국내기업이든 외국기업이든 한국에서의 투자는 꺼리면서 한국 말고 어디 다른 나라에 투자할 데가 없나 찾고 있느냐. 왜 외국인 근로자를 끌어들이면서도 정작 우리 젊은이들은 실업자로 떠돌게 하고 있느냐.

북핵 문제가 어찌 풀릴까가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현안인 나라. 대북 송금이 불법으로 이뤄졌던 나라. 그 와중에 대기업 총수가 자살한 나라. 노조가 반전을 외치고 한총련이 여전히 반미시위에 나서는 나라. 하다 하다 못해 '몰카'까지 등장해 정정(政情)이 표류하는 나라. 국제 기준.관행에 아랑곳없이 소수 노조가 떼를 쓰는 나라. 웬만한 나라보다 임금이 높은 나라.

이런 것이 정작 문제고, 이런 것을 조정하고 바로잡는 것이 국정(國政)이며 정치이거늘. 이제는 현대차 노사협상 결과가 금리.재정보다 나라경제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고, 한총련의 붉은 띠가 북한의 강경성명보다 한반도 정세를 더 흔들 수 있지 않느냐. 오죽하면 최근 워싱턴을 방문했던 한 인사가 가장 많이 듣고 온 두 단어가 distrust(못 믿겠다).unreliable(못 믿을) 이었겠느냐.

본전 생각이 절로 나는구나. 비(非)경제가 경제를 한창 갉아먹게 놔둔 채 저금리를 더 내리고 널널한 재정을 더 풀어 경제를 받친다?

그러고보니 욕 먹을 놈은 금리나 예산이 아니로구나. 금리.예산 너희도 속으로는 본전 생각이 오죽 간절하겠느냐.

소득 2만달러는커녕 1만달러 본전도 못 건질지 모르는데.

김수길 기획담당 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