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왕국’ 브라질, 290년 만에 원두 수입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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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의 나라’ 브라질이 290년 만에 처음으로 수입산 커피의 위협을 받을 처지에 놓였다. 지난 3년간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브라질 정부가 19세기 이후 처음으로 베트남 등 해외 커피에 시장을 개방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가뭄 탓 인스턴트용 품종 수확 급감 #시장 한시 개방, 관세 인하도 검토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브라질 커피농장에서 로부스타(robusta) 품종 수확량은 가뭄으로 인해 평년보다 60%가 급감했다. 로부스타는 고급 커피인 아라비카보다 질이 떨어지는 품종으로 인스턴트 커피의 주원료로 쓰인다. 가뭄으로 수확량이 줄면서 브라질 로부스타 가격은 지난해 11월 ㎏당 570헤알(약 21만원)로 2016년 초보다 50% 이상 뛰었다. 국제시장에서도 5년 사이 최고치를 기록 중이다.

브라질 인스턴트커피협회의 아기날도 호세 데 리마는 “로부스타 가격이 아라비카만큼 올라간 것은 브라질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라고 말했다.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 고급화 추세에 따라 미국과 유럽 등에선 인기가 떨어졌지만 동남아와 동유럽 등 신흥시장에서는 여전히 높은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전 세계 커피 시장의 3분의 1이 인스턴트 커피다. 로부스타 가격이 치솟을 경우 세계 인스턴트 커피 시장의 강자인 브라질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결국 브라질 정부는 로부스타 생두 6만t을 한시적으로 수입하기로 했다고 FT는 전했다. 커피 수입은 오는 22일 미셰우 테메르 브라질 대통령이 주재하는 무역위원회(Camex)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정부는 이번에 수입 허가된 물량에 한해 커피 관세를 현행 10%에서 2%로 낮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브라질 커피산업협회 측은 “볶은 커피와 분쇄 커피를 수입한 적은 있지만, 외국산 생두를 이렇게 대량으로 들여오는 것은 290년 브라질 커피 역사상 처음”이라고 말했다.

브라질 커피 재배업자들은 수입에 반대하는 분위기다. 1990년대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시장을 개방했다가 수입산과의 경쟁에서 뒤처져버린 ‘악몽’이 재연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스턴트커피협회의 리마는 “커피는 글로벌 산업이고 우리는 전 세계와 경쟁한다”며 “생산지와 시장을 한 곳으로 제한해서는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고 꼬집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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