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들리」의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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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워싱턴 포스트지의 「보브·우드워드」는 「악바리」로 소문난 기자다. 그는 워터게이트사건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 결국 「닉슨」을 대통령직에서 밀어냈었다.
그 「악바리」 기자가 지난해 5월 초순 숨을 죽이며 편집국장 방으로 들어왔다. 그의 속주머니엔 미 정보기관이 소련의 통신문을 도청, 해독하는 극비문서가 들어있었다. 뭔가 또 큰 일이 벌어질 참이었다.
그러나 「브래들리」편집국장은 그 기사를 보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국가안보」와 「국가이익」을 생각한 것이다.
그 무렵 미국정부는 기겁을 하고 워싱턴 포스트에 백방으로 압력을 넣었다. 「레이건」대통령이 「그레이엄」회장에게 전화를 걸고, CIA 「케이시」국장은 기사가 나가기만 하면 기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러나 20여 일이 지난 5월 28일 워싱턴 포스트지는 문제의 기사를 보도해 버렸다. 워싱턴 포스트사는 『이미 알려진 비밀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미국 간첩 「로널드·펠턴」이 그 극비문서를 소련에 팔아먹은 사실이 확인되자 「브래들리」국장은 보도 보류를 철회한 것이다. 물론「브래들리」나 「우드워드」기자에겐 그 후 아무 일도 없었다.
이 때 「브래들리」국장이 남긴 말이 있다.
『정부가 국가안보라는 양탄자 아래 쓰레기를 감추려고 할 때 문제가 생긴다.』
「국가이익」과 「국민의 알 권리」는 가깝고도 먼 사이다. 「국가이익」의 기준을 정부가 임의로 아무 데나 적용하려고 들면 언론은 도망갈 수밖에 없다.
국민의 편에선 정부가 잘 하는 일뿐 아니라 못하는 일도 알고 싶어한다. 호기심 때문이 아니다. 국민은 주권자고 납세자다. 문자 그대로 알 권리를 당당히 갖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같은 언론천국에서도 「국가이익」과 「알 권리」는 가까운 사이일 때보다 앙숙일 경우가 더 많다. 월남전 때의 「펜터건 페이퍼」는 유명한 사건이고, 사례를 들자면 끝이 없다. 하지만 미국은 망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고 있다.
요즘 어느 월간잡지가 김대중씨 납치사건을 다룬 이후락씨 인터뷰 기사를 놓고 『국익이냐 알 권리냐』의 시비에 휘말려 있다.
우리의 민주화는 이런 시비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어야 그 뿌리도 튼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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