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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채화 같은 영화 '동승'

중앙일보

입력

애기스님, 총각스님, 큰스님의 무공해 한솥밥 이야기...
그들만의 언(X) 해피한 합숙이 시작됐다!

초부 아저씨는 거짓말쟁이다!

천진난만한 아홉살짜리 애기스님 도념과 외모에 엄청 관심이 많은 사춘기 총각스님 정심, 그리고 때론 할아버지처럼 자상하고 때론 무지(?) 폭력적인 큰스님이 한솥밥을 먹으며 도란도란 살고 있는 고요한 산사. 올해도 어김없이 꽃들이 피었고, 빠알간 단풍이 졌고, 함박눈이 내렸지만, 어린 도념이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는다. 절에 나무를 해주는 아랫마을 초부 아저씨는 분명 도라지꽃이 활짝 피면 엄마가 오신다고 했는데... 이번에도 도 내 키가 저 나무만큼 자라면 오신다고 하겠지? 아저씨는 거짓말쟁이!

도대체 포경수술이 뭐길래... 무서운 큰스님을 왜 자꾸 조를까?

형처럼 나를 이뻐해주는 정심스님은 왜 허구헌날 절에서 폭력(?)을 휘두르는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큰스님 뒤를 쫄쫄 따라다니며 돈을 달라고 조르는 걸까? 스님이 어디에 돈이 필요하다고. 이발할 머리도 없고, 샴푸도 필요 없고, 옷도 필요 없는데... 포경수술 때문이라나? 그게 도대체 뭘까... 급기야 항복한 큰스님은 정심과 도념에게 쌈짓돈을 쥐어주고, 난생 처음 유쾌한 세상 나들이를 나선 둘은 맛있는 피자도 먹고 바닷가도 놀러가고... 신났다 신났어... 근데 그렇게 조르던 포경수술도 했는데 정심스님은 왜 저렇게 시무룩할까?

이쁜 아줌마를 엄마라고 부르면 안되나요?

얼마 전부터 절에 들르는 그 이쁜 아줌마가 오늘도 또 왔다. 나는 머리털 나고(아니, 그건 아니고...) 그렇게 이쁜 아줌마는 처음 봤다. 저 아줌마가 우리 엄마면 얼마나 좋을까? 이쁜 아줌마는 큰스님한테 나를 입양하겠다고 하지만, 큰스님은 막무가내로 안된다고 하신다. 미운 큰스님... 큰스님은 내가 엄마가 생기는게 질투 나는게 분명하다. 하지만 뭐 어때? 이번엔 아줌마한테 잘 보여 꼭 엄마라고 부르고 말테야... 도념의 마음은 또 다시 설레이기만 하는데...!

제작노트

주경중, 그가 <동승>을 만든 이유!

사실 동승 시작했던 99년부터 끝낸2002년까지 충무로엔 돈이 흘러 넘친다고 연일 떠들어 대던 시절인데 기획부터 7년에 걸쳐 완성한 동승이 그 많은 돈의 혜택을 조금이라도 보지 못한 것에 대해선 소외감이 좀 있었지. 그런데 그건 금융 자본의 성격상 어쩔수 없다고 처음부터 생각했고 동승에 올 돈들은 아니라고 봤어. 전에 말한 대로 동승은 영화판에 돈이 흘러넘치더라도 결국은 내가 나서지 않으면 찍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거지. 동승의 기획에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들도 꽤 있었지만 자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하면 영화화 될 수 없는 문제쟎아. 금융 자본은 우선적으로 영화를 산업적 측면으로 고려할 수밖에 없는 성질을 갖고 있어.

그래서 영화의 본질적인 고민보다는 유행에 민감하고 데이터에 의존해서 오로지 수익을 창출하는데 목적을 두는 거지. 그 때문에 비슷 비슷한 영화들이 쏟아지는 것이고... 나는이 자본들을 좀 심하게 말하자면 사채성 금융자본이라고 봤어. 물론 이런 자본들이 가져온 한국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긍정적인 면은 무시하는 것이 아냐. 단지 근본적으로 문화를 사랑해서 들어온 돈들이 아니라는 것이지. 즉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업성이 있다라고 판단되어진 아이템에 쏟아진 그야말로 자본의 논리에 의해 들어온 돈이라는 거야.

이런 성질 때문에 이 자본은 수익성에 의심이 가면 언제든지 빠져 나갈수 있는 돈이야. 지금 충무로에 돈이 빠져 나간다라는 소리가 나오는게 다 그런 이유들인거지. 이런거야 뭐 상식적인 얘기니까 누구나 예측했던 얘기들이고... 그런데 영화라는게 제작 자본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이라서 어떤 자본이든지 간에 필요한 것도 현실이야. 그래서 이 자본을 투기성이라고 욕만 할 수는 없는 거지. 그렇다면 이 자본을 영화인들이 어떻게 이용해야 하는가.. 라는 고민을 안해볼 수가 없겠지? 나는 영화인들이 이 자본을 건강한 충무로 자본으로 정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해. 그렇게 될려면 최소한 투자자에게 손실을 입혀서는 안되겠지. 그리고 영화의 질적 수준을 높여서 스스로 건강한 영화계가 되어야 해. 왜냐하면 맨날 손해를 입히는데 투자자가 영화를 계속하려고 하겠어? 또 영화를 엉망진창으로 만드는데 누가 사명감을 가지고 장기적인 투자를 하겠냐고... 영화계 스스로가 건강해지면 자본 역시 건강하게 살아남아 있다고 생각해. 그것은 자본, 또는 산업 논리의 또 다른 모습이지. 진정한 충무로 영화인들이라면 자본의 소중함을 알고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되는 거야. 최소한 남 돈으로 영화 만들면서 손해를 입혀선 안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어?

최근에 60억이니 100억이니 우습게 말하던 프로젝트가 흥행에 실패한 것을 보자고.. 단순 비유지만 100억이면 5억짜리 소액 투자자 20명이 몇 년을 고생하게 되는 거야. 막연한 흥행에 대한 기대 갖고 남의 돈을 가지고 모험을 해선 안되지. 이건 영화 만드는 사람의 양심과도 상관이 있다고 생각해. 아무리 예측할수 없는 게 영화의 흥행이라지만 60억, 100억 투자해서 자본 회수가 쉬운 우리 영화시장이냐고.. 그건 아니거든. 내수 시장 극복을 위해 해외 시장 운운하는데 가장 큰 시장인 유럽이나 미국같은 데서 언어의 장벽을 넘어서 한국 영화를 봐주겠어? 아직은 아냐. 실제로 그쪽에서 한국 영화를 수입해 상영하는 것은 대부분 소수의 극장에서만 상영하는 수준이지 전면적인 개봉같은 것은 아니거든. 정서적으로 가까운 동남아 시장으로의 진출도 그래. 어짜피 거기 가서 싸워야 할 상대는 헐리우드 영화인데 상대가 되냐고.. 100억이면 우리 한테는 많은 돈이지만 헐리우드에선 아무 것도 아니쟎아. 결국 100억의 의미가 별로 없는 거야... 이런 점에서 애니메이션은 현재로썬 해외 시장 개척에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봐. 그림은 인종, 국가를 초월한 소통 수단이니까.. 언어의 장벽도 없을 테고....

작품해설

주경중 감독의 장편 데뷔작 <동승>이 오는 11월 개최되는 하와이 국제 영화제에 공식 초청 되었다. 하와이 영화제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영화를 발굴하는 데 앞장섬으로 미국영화제로서는 드물게 권위를 인정 받고 있는 영화제이다.<동승>은 이미 지난 6월 상하이 국제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함으로써 1993년 임권택 감독이 수상 한 이후 처음으로 본상을 받는 쾌거를 이룬 작품이다.

동승은 이 외에도 몬트리올 영화제의 world cinema부문에서도 상영될 예정이며, 9월 30일부터 열리는 버스터 코펜하겐 국제 영화제에서도 경쟁작으로 공식 초청을 받았다. 또한 10월에 열리는 카이로 영화제에서도 초청장을 받아놓은 상태다. 이 밖에도 만하임 하이델베르그, 도쿄 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초청의사를 타진해 오고 있어 앞으로 <동승>의 발걸음은 더욱 바빠질 것으로 보인다. 주경중 감독이 시나리오를 쓴 <동승>은 월북작가 함세덕의 원작 희곡을 각색한 것으로 92년 연우무대를 통해 연극무대에 오르기도 했다.

씨네서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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