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끌어주는 공동체 의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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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에서도 널리 읽힌 「헤밍웨이」의 전쟁소설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는 제목이 잘못 번역된채로 지급까지 그대로 배포되고 있다.
정확하게 뜻을 옮긴다면 이 소설의 재목은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조종이 울리나』가 되어야 한다.
「헤밍웨이」는 스페인 내란을 배경으로 공화파 게릴라들의 항쟁을 그리면서 그들간의 절박한 공동체 의식을 「너의 죽음은 곧 나의 죽음」이라는 차원에서 그리고 있다.
이 소설 제목은 l7세기 영국시인 「존·던」의 시의 한 구절을 딴 것이다.
산업혁명을 앞두고 서서히 변혁의 바람이 일기 시작한 영국사회의 공동체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 씌어진 이 시는 『누구도 외딴섬처럼, 자족·독존할 수는 없다』는 구절로 시작된다.
이 시는 이어 이웃이 고통을 받을 때, 상처를 입을 때 죽음을 당할 때 그 고통과 상처와 죽음은 바로 당신 자신의 몸과 마음에도 아픔으로와 담는 것이라고 옮고 있다.
『따라서 어디선가 조종이 울릴 때 그것이 누구의 죽음을 애도하는 종소리인가 묻지를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바로 당신 자신의 죽음을 알리는 조종소리이니라』고 이 시는 시적 과장을 섞어서 끝맺고 있다.
이웃의 죽음을 자기의 죽음으로 받아들일 정도의 공동체 의식은 현실 세계에서는 찾기 어려운, 지극히 높은 도덕용의 세계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적 과장을 새겨서 음미해 볼 때 사회 모든 구성원이 상호의존 관계에 있는 산업사회에서 그것은 공동의 생존용 위한 가장 현실적인 행동율임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지난 두달동안 우리 사회서 뒤흔든 노사분규의 진행과정에서 그것을 체험했다.
지금까지 순종을 강요당해온 근로자들이 파업으로 도전해 봤을 때 13%로 예상되었던 금년도 경제 성장율이 10%이하로 곤두박질치고, 한국이 일본으로 가느냐, 필리핀으로 가느냐의 갈림길에 와있다는 엄청난 진단까지 나왔다.
이 분규에 대해 서로 정반대의 강한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조차 고도성장기를 통해 근로자들이 많은 희생을 강요당해 왔으며 그런 불균형이 이제는 시정되어야 할 시기서 맞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집단인식이 앞으로 예상되는 더 큰시련을 맞더라도 후퇴하지 않는다면 사회의 안정을 지킬 최후보루로서의 공동체 의식은 노조를 불순관해온 과거에 비해 큰 발전을 한 셈이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탱해온 공동체 의식은 위로부터 뒤집어 씌워진 가치체계였다.
고도성장을 향한 질주 속에서는 앞선 자가 뒤처진자의 손을 끌어주는 공동운명체 의식 보다, 서로를 경쟁관계 또는 주종관계로 파악해왔고 그것이 덕성인양 여겨왔다.
그런 관계가 생산성용 높이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승자보다 훨씬 더 많은 패자를 만들어 냈고 승자의 쾌감에 비해 훨씬 가혹한 고통을 패자에게 안겨 주었다.
그 결과 우리가 겪고있는 단절이 왔다.
경제 전문가들 중에는 근로자들의 자기 몫을 요구하는 시기가 수년간만 늦추어질 수 있다면 한국경제의 규모가 충분히 커져서 근로자들의 몫이 그만큼 불어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아쉬워하는 측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아쉬움은 고도 성장기의 논리와 짚서가 정치·경제·사회면에서 한꺼번에 무너지고 있는 상황을 도외시한 백일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최근의 노사분규는 보여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공동체 의식이 더이상 희석될 여유가 없음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공동체 의식용 이야기 할때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앞으로 우리사회가 염원하고있는 민주화를 이룩하기까지에는 수많은 역경이 중점되어 있다는 점이다.
역경의 고비마다 공존의 바탕을 흔들어 놓을 요인들이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많이 쌓여있다.
그런 요인들은 정치의 외형이 민주화로 탈바꿈하는 것과는 별 관계없이 해소되기를 조급하게 기다리고 있다.
세대간의 엄청난 단절현상이 그렇고, 계층간의 적대감이 그렇다.
이 고비를 넘기려면 공동체 의식은 더 이상 희석되어서는 안된다.
농담으로 하는 소리인지는 몰라도 과격파 학생들의 구호중에 『××은 지구에서 떠나라』라는 것이 들어있다는 보도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와같은 증오의 폭력이란 바로 그 주창자를 결국에는 멸망시켰다는 역사의 교훈을 모르는 유치한 소리지만 그런 증오와 폭력의 잠재성이 우리 사회에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최근에 목격한 노사분규에서 교훈을 얻는다면 그것은 노와 사, 그리고 이들을 뒷받침하고 있는 사회가 어느 누구도 지구를 떠나게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웃의 죽음을 알리는 제종소리는 현실적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는 소리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리는 모두 공동운명체라는 자각이 앞으로 전개될 모든 분쟁의 한계를 정하는 울타리역할을 할 수 있다면 한국은 필리핀쪽으로 가지 않아도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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