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미 갈등 부추기는 대통령의 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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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노 대통령의 발언은 위폐 제조 등 불법 활동을 빌미로 미 정부가 북한의 숨통을 조여가고 있는 배후에 북한 체제의 붕괴를 노리는 일부 강경파의 의도가 감춰져 있다면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국 대통령이 미국 내 일부 세력을 향해 직격탄을 날림으로써 대북 정책을 놓고 한.미 간 이견과 갈등이 심각하다는 인상을 전 세계에 심어준 꼴이 됐다.

북한 체제의 붕괴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은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이다. 지난해 11월 경주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대통령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원칙을 재천명하면서 다시 확인한 사항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굳이 미국 내 일부 매파 인사들과의 시각차를 부각시켜 가뜩이나 껄끄러운 양국 관계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면 이는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한.미 간에 시각차는 있을 수 있고, 또 있는 것이 당연하다. 대화와 협상을 통해 이를 봉합하고 해소하는 것은 외교의 몫이다. 노 대통령이 북한 위폐 문제에 대한 사실확인과 판단을 실무자들에게 맡기겠다며 한 발 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중요한 외교 사안에 대해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선을 그어버리면 실무자의 운신 폭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통령의 외교적 언사에는 여지를 남겨두는 신중함과 부드러움이 요구되는 것이다. 한.미 갈등을 부추기는 듯한 대통령의 발언은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