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法官 다단계 승진구조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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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근 대법원의 구성 및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사법부의 역할과 그 중요성에 대한 국민의 자각이 한층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우리의 사법제도와 법관인사제도를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잘못된 주장도 적지 않다고 본다.

그 가운데 하나가,'법원이 다단계의 피라미드식 승진 구조를 가지고 있어 법관들이 관료화되고 승진하기 위하여 윗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재판한다'는 비판이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제는 실로 심각하다. 과연 그러한가?

우리 사법제도는 경력법관제도(career system)를 채택하고 있다. 즉,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사법연수원 과정을 마친 사람을 막바로 법관으로 임명해, 지방법원 배석판사.단독판사, 고등법원 배석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 등으로 경력을 거치면서 법관으로서의 자세와 재판능력을 연마시키고, 그러한 경력의 축적에 비례해 좀 더 중요한 업무를 담당하도록 설계된 제도다. 이는 일본.독일의 방식과 유사하고, 장기간 변호사나 검사로 활동한 법조인 중에서 법관을 선발하는 미국의 제도와는 다르다.

우리 법관들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가 될 때까지는 승진도 탈락도 없이 모두 다음 보직으로 나아가고, 고등법원 부장판사의 단계에서 심사를 거쳐 일부만 승진하게 된다. 20여년의 법관 경력을 쌓은 후 비로소 처음으로 심사를 받아 승진하는 셈이다. 이를 가지고서 다단계의 승진 구조라고 할 수는 없다.

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선발하는 것은 그 정원이 한정돼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요 사건의 2심 재판인 고등법원 재판의 설득력을 더욱 높이기 위한 조치이고, 1심 재판에 불복해 항소한 당사자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같이 고법부장 선발이 불가피한 이상, 선발심사의 공정을 기하기 위해 법관들에 대한 근무평정도 불가피하다. 이러한 근무평정제도는 경력법관제도를 갖고 있는 일본이나 독일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법관근무평정 및 승진심사는 법관이 신분독립을 내세워 일체의 평가를 거부하며 무사안일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고, 부단한 자기연마와 능력개발을 촉진시켜 국민이 요구하는 재판을 더욱 충실하게 하기 위한 장치이지, 법관들을 옥죄어 통제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법관이 근무평정이나 승진을 의식해 재판업무에 관하여 감독자의 눈치를 살피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만약 그러한 법관이 있다면 그는 법관의 자격이 없다. 또한 재판에 관해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감독자도 없다.

이러한 점들은 국민이 믿어도 좋다고 결단코 말하고 싶다. 법관들이 과중한 업무량에 힘들어 하면서도 법관직에 자긍심을 가지는 이유는 바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재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제되는 것이 '대법관이 법관승진인사의 정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대법원에 법관 출신이 너무 많으며, 진보적인 성향과 다양한 경력을 가진 법조인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리 대법원이 미국의 대법원과 같이 대법관 전원이 논의할 가치가 있는 소수의 사건만 골라서 재판할 수 있다면 위와 같은 주장은 충분히 고려할 가치가 있다.

그러나 우리 대법원의 현실은 미국과 다르다. 국민은 대법원이 개별 사건에 대한 최종심의 기능을 충분히 해주기를 바라고 있다. 십수년 전에 상고제한제도를 도입했으나 불과 몇 년 뒤 대법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폐지되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우리 대법원은 연간 2만여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 그토록 많은 사건을 대법관 전원이 함께 논의해 처리할 수는 없다.

수많은 사건을 최종심으로 처리하자니 대법관의 경력과 재판능력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대법원의 최종적인 재판을 기다리는 당사자들에게 누가 대법관이 돼야 하는지 물어보기 바란다. 이러한 사정을 깊이 살피지 아니한 채 가벼이 결론지을 문제가 아니다.

曺大鉉 법원행정처 인사관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