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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놀거리볼거리] 섬세하고 가슴 짠 ~ 한 극장 예술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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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차일드

미 앤 유 앤 에브리원

명절에 볼 만한 영화가 꼭 들뜬 분위기여야 하는 게 아니라면, 예술영화를 감상하며 차분하게 생각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어떨까. 마침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작품성 있는 영화들이 상영 중이다. 대형 멀티플렉스에는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예술영화 전용관을 찾아가는 불편은 감수해야 하지만. 벨기에의 감독 다르덴 형제의 '더 차일드'는 도시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작은 비극을 섬세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좀도둑질로 근근이 살아가는 주인공 브뤼노는 여자친구가 갓 낳은 아기를 영아 밀매조직에 넘기는 어처구니없는 짓을 저지른다. 하지만 푼돈을 벌어보려는 그의 얕은 꾀는 거꾸로 자신을 옥죄는 족쇄가 되고 만다. 몸은 어른이되 마음은 턱없이 철없는 브뤼노가 마침내 스스로 처한 현실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되는 과정을 영화는 요란한 기교 없이 정직한 카메라의 움직임으로 전달한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작품으로 서울 광화문 씨네큐브(흥국생명 건물)에서 볼 수 있다.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나다(동숭아트센터 1층)에서는 미국 선댄스영화제 수상작인 '미 앤 유 앤 에브리원'(감독 미란다 줄라이)과 '스테이션 에이전트'(감독 톰 매카시)를 상영하고 있다. 전형적인 미국 소도시를 배경으로 한 '미 앤…'은 무언가를 열망하긴 하지만 무의미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다. 구두 가게 점원 리처드와 예술가 지망생 크리스틴은 서로 호감을 갖고 있지만 좀처럼 마음을 열고 가깝게 다가서지 못한다. 성적 호기심으로 충만한 사춘기 소녀들과 음란 채팅을 즐기는 꼬마들, 채팅 상대가 꼬마인 줄도 모르고 푹 빠져버린 중년 여성 등은 현대인의 은밀한 욕망을 엿보게 한다. '스테이션 에이전트'는 난쟁이 핀의 고독한 삶에 대한 이야기다. 같이 살던 친구가 갑자기 유명을 달리하면서 그는 친구가 물려준 시골 기차역 부속주택으로 가게 된다. '신천지'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달리 기차역 주변은 이미 퇴락한 동네였다. 거기서 그는 자신과 같이 똑같이 외로운 이혼녀 올리비아와 남미 출신 이민자 조를 만난다. 이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친구가 되는 모습은 진정한 우정이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일본 영화 '메종 드 히미코'는 영화제 수상작은 아니지만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로 국내 예술영화 매니어들에게 호평을 받은 이누도 잇신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는 은퇴한 뒤 한적한 시골 휴양지에 모여 사는 게이(남자 동성애자)들과, 평범한 젊은 여성 사오리의 이야기를 다룬다. '히미코의 집'이란 뜻의 제목은 게이 양로원 이름이고, 설립자 히미코는 사오리의 친아버지다. 사오리는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아버지를 용서하지 못하지만 빚을 갚으려고 어쩔 수 없이 양로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처음엔 게이들에게 거부감을 갖고 대하지만 이내 그들의 순수한 마음에 자신도 모르게 끌리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겪으면서 게이들이 성 정체성만 다를 뿐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인간이라는 점에서는 보통 사람과 같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서울 종로의 시네코아와 일부 지역의 CGV 등에서 만날 수 있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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