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원 칼럼] 6자회담, 역동적으로 하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7면

엄청난 실망과 충격, 그리고 비극 속에서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

최근에 우리 사회는 혼란에 혼란을 거듭하고 있지만, 미래를 향한 진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 북핵 문제를 다루기 위한 다자회의를 극구 반대해온 북한이 "우리의 주동적이고 평화애호적인 노력에 의하여 조미 사이의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이 베이징에서 곧 열리게 된다"고 선언한 것은 하나의 긍정적인 진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물론 6자회담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6자회담이 성공할 가능성보다는 실패할 가능성이 더 크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무적인 면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 통치자가 6자회담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북한체제에 대한 어떤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고 본다.

*** 협상 받아들인 북한의 의도는

북한이 다자회의에 동의한 것은 미국이나 한국의 친절(햇볕) 때문도 아니고 북한이 변화했기 때문도 아니다. 과거에 공산주의 이론가들이 자주 쓰던 표현을 빌린다면 북한은 현 상황에서 존재하는 '힘의 상관 관계(correlation of forces)'로 보아 다자회의를 일단 받아들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북한은 6자회담의 틀 안에서 미국과의 양자회담을 시도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모든 이슈를 6개국 전체의 어젠다로 취급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6자회담은 어떻게 진행될까? 6자회담의 협상 구조부터 주시할 필요가 있다. 6자회담은 다자간 협상의 형태로 돼 있지만, 북한 핵에 대해서는 북한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 모두가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니까 회담 어젠다의 면에서 보면 6자회담은 근본적으로 양극 구조로 돼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협상 기본 목표의 양극적 배분은 과거 냉전 하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그동안 북한이 왜 다자회담을 반대해왔는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북한을 제외한 다자회담 참여국 모두가 북의 핵을 반대하는 상황은 북한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결코 반가운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5개국 모두가 북핵 반대라는 공통된 입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회담 결과가 반드시 5개국의 공통된 목적을 달성해 준다는 법은 없다. 실제로 5개국은 공통된 이익과 더불어 나라마다 다른 목표를 추구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북한은 5개국 간의 관계를 교묘히 조종함으로써 상호 견제토록 하고 그들을 서로 '분리시킴으로써 지배'하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크다.

협상은 협상하는 국가 간에만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협상은 대외적인 협상에 못지 않게 대내적 협상도 중요하다. 실제로 경우에 따라서는 내부세력들을 설득하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것이 협상 상대국 대표와 특정한 문제에 합의하기보다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 이른바 햇볕정책이라는 것도 국민의 동의를 구하지 못하고 국내 세력들과 협상을 시도하지도 않았던 실패한 정책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 5개국 상호견제 전략 경계해야

마지막으로 6자회담에서의 협상은 대북 협상, 5개국과의 협상, 그리고 대내협상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각 협상의 결과와 절차가 나머지 협상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협상 전략은 입체적이고 역동적으로 기획돼야 한다. 그리고 협상대표는 북한과의 대화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미국을 비롯한 모든 회담 참여국 대표들의 신뢰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북한의 선택이다. 과연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핵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체제 유지를 위해 핵에 의존할 것인가? 북한은 후자를 택하면 체제가 오히려 더욱 빨리 몰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한국은 무엇보다도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국내 합의 없이는 6자회담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진리다.

김경원 사회과학원장.고려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