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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공조'의 흥행 비결은 상투성?

중앙일보

입력

아주 뜻밖의 일은 아니다. ‘공조’(1월 18일 개봉, 김성훈 감독)가 설 연휴를 지나며 ‘더 킹’(1월 18일 개봉, 한재림 감독)을 앞질러, 2017년 첫 번째 성수기 관객 동원에서 1위를 차지한 사실 말이다.

명절 성수기에 ‘공조’가 흥행한 것이 꽤 개연성 있는 일이라는 의미다. 개연성의 요소는 바로 ‘웃음’이다. ‘공조’는 코미디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한국 영화계에서 언제부터인가 코미디영화는 가족영화와 동의어로 여겨진다. 이는 말초적인 조폭 코미디가 유행한 이후, 이를테면 ‘과속스캔들’(2008, 강형철 감독) 등 ‘차태현 장르’라 부를 만한 가족·코미디영화들이 성공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가족·코미디영화는 온 가족이 함께 봐도 무안하지 않으며,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감동적인 영화를 가리킨다.

그런 의미에서 ‘공조’는 가족·코미디영화의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조립된 영화에 가깝다. 웃음과 눈물, 긴장과 코미디의 조합만 봐도 그렇다. 기존 영화들과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코미디 반대편에 액션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정도 얼개를 파악하고 나면, 포스터만 봐도 누가 웃음 담당이고 누가 액션 담당인지 분명히 알 수 있다. ‘공조’에서는 유해진이 웃음 담당이고, 현빈이 액션 담당이다. 극단적 캐릭터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 쓰는 말투, 사는 나라, 믿는 이념은 다르지만 가족의 소중함만큼은 두 캐릭터에게 동일하다. 나머지 차별성은 일종의 온도 차를 위한 내재적 장치라 말할 수 있다. 가령 남한 형사는 하루하루 대충 수습하며 사는 평범한 형사인데, 그에 비해 북한 형사는 최정예 부대 출신 엘리트다. 남한 형사 강진태(유해진)는 말도 많고 실수도 많다. 북한 형사 림철령(현빈)은 말도 없고 실수도 별로 없으며 대개 절도 있게 행동한다.

‘공조’의 이야기 구조를 보자면 새로운 것은 거의 없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투성이 오히려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점이다.매주 똑같은 컨셉트로 반복되는 TV 개그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을 유지하는 이유와도 같다. 같은 코너에 같은 주인공이 등장해 큰 차별성이 없음에도, 번번이 시청자는 학습된 유행어가 등장하기를 기다린다. 어떤 웃음은 허를 찔러야 폭발하지만, 이런 웃음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준비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을 웃음이 아니라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조’는 그런 클리셰가 많아 견디기 힘든 영화였다. 남북한 공조 수사의 목적인 위조지폐 동판을 의외로 쉽게 포기하는 모습이나 3일 만에 ‘의리의 화신’이 된 철령을 보고 있노라면, ‘의리’ ‘정의’ 같은 추상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세상 어떤 일도 해낼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게 된다. 저럴 거면 뭐하러 애써 동판을 찾으려 했을까. 이 영화에서 동판은 서사적 필요에 의해 너무 간절한 것이 되었다가 아무런 사용 가치가 없는 것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공조’보다 ‘더 킹’이 한층 세련되고 정교하게 느껴졌다.

물론 ‘라라랜드’(2016, 다미엔 차젤레 감독)처럼 매혹적인 작품이라고 해서 계속 박스오피스 1위를 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머리를 쓰고 감정을 소모하게 만드는 영화가 꼭 관객의 지지를 받는다는 필연성도 없다. ‘공조’는 관객의 소비 심리를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듯, 상투성을 과하게 활용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더 킹’과 ‘공조’는 흥행 면에서 일방적 압승이라기보다 보기 좋은 경쟁 구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공조’의 이야기는 모든 것이 너무 쉽다. 물론 유해진의 매력은 여전하고 현빈의 변신도 색다르다. 김주혁의 악역 연기 역시 극에 탄탄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그러나 한 편의 영화를 배우들의 힘만으로 지탱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누군가는 “명절에 스트레스 받으며 굳이 복잡한 이야기의 영화를 볼 필요 있느냐”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 감상을 ‘여가 선용’이라 부르는 까닭은, 영화를 보는 시간이 사람들에게 감각적 새로움과 정서적 환기를 주기 때문 아닐까. ‘공조’는 그 환기조차 기시감에 호소한다. 그럼에도 몇몇 유머와 감동이 관객의 마음을 샀다면, 왜 그럴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고민이 필요할 듯하다.

글=강유정. 영화평론가, 강남대학교 교수, 허구 없는 삶은 가난하다고 믿는 서사 신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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