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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공포 스릴러 '거울 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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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면

신인 김성호 감독의 공포 스릴러 '거울 속으로'는 여러 모로 '도전'이다. 거울을 찍는 것은 영화가 터부시하는 것 중 하나다. 거울에 카메라와 조명이 반사되기 때문이다. 반사가 되니 카메라를 움직이는 범위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교한 연출과 특수 촬영이 필요하고 컴퓨터 그래픽도 일부 가미돼야 한다.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 아니다.

'거울 속으로'는 이러한 기술적 터부를 깨고 원혼과 귀신, 복수로 채워지는 한국 공포.스릴러 영화의 관성을 일신했다. 수많은 거울을 '조연'으로 등장시킨 이 영화의 영상은 잘 매만진 티가 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의 '서비스 샷'격으로 들어가는 귀신의 돌발적이고 뜬금없기까지 한 출현이나 강력한 효과음으로 공포를 '거저 먹으려는'게으름이 없어 좋다.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통해 서서히 죄어드는 두려움을 선사하려 한 부지런함은 이 영화의 강점이다.

무대는 화재 사고 후 재개장을 준비하고 있는 한 백화점. 사장의 조카이자 이곳의 보안실장인 우영민(유지태)은 과거 경찰이었지만 인질로 잡힌 동료 형사를 죽게 한 과실로 옷을 벗었다. 어느 날 백화점에 의문의 연쇄살인이 일어나고 예전에 함께 일했던 하형사(김명민)가 파견된다. 영민은 화재 사고 때 죽은 총무부 직원 이정현의 쌍둥이 동생 이지현(김혜나)이 비밀을 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거울은 이 영화를 통째로 감싸안는 은유이자 좁게 보면 모든 사건의 단서다. 영민은 거울 속에 비친 범인을 쏜 탓에 동료를 잃고 만다. 그는 후유증으로 거울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는 일종의 '불구'다. 거울 속에 있는 영민은 거울 밖의 영민이 극복해야 할 대상이다.

다소 뻔한 설정이긴 하지만 사건의 열쇠를 쥔 인물을 쌍둥이로 한 것도 거울의 속성을 다시 한번 재창한다. "거울에 비친 나는 언니예요"라는 대사처럼 지현에게는 두개의 자아가 있으며 따라서 지현은 두개의 세계에 산다. 지현이 정신병력을 지닌 것도 우연이 아니다. 관객은 영화를 보면서 지현의 방을 가득 메운 수많은 거울이 단순히 그의 정신분열을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망자와 생자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각본을 쓴 감독의 지적 부지런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거울을 살인 사건의 단서뿐 아니라 인물의 심리를 반사하는 매개체로까지 쓰는 욕심을 부린다. 눈속임 기법으로 유명한 얀 반 다이크의 '아르놀피니의 초상', 거꾸로 뒤집어진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사인 등 거울에 얽힌 흥미로운 사실이 이를 지원사격한다.

그런데 이러한 지적 배경은 의외로 어이없게 풀리는 사건 때문에 힘을 잃는다. 기초 공사에 공을 들이다 보니 영화의 한 축을 지탱하는 스릴러로서의 짜임새가 헐거워졌다. 되풀이되는 거울의 역할에 흥미를 느끼던 관객은 그러나 이 영화의 또다른 한 축인 살인 사건의 트릭에는 싱거움을 느끼게 된다. 데뷔작으로서는 상당히 야심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 선뜻 엄지손가락을 올릴 수 없는 이유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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