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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 절벽 못 버텨, 중국 조선소 75% 문 닫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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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을 위협하며 위세를 떨치던 중국 조선업이 급격히 쇠퇴하고 있다. 세계 1위를 차지하기 위해 무리하게 덩치를 키우다가 ‘수주 절벽’에 부딪혀 업계 전체가 줄도산할 위기에 처했다. 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중국 조선업은 급격한 수요 부진으로 조선사들이 잇달아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대거 해고되고 있다. 수천 명의 조선업 노동자들이 근무했던 중국 장쑤성의 이정시(市)만 해도 버려진 크레인과 만들다 만 녹슨 배만 남아있는 폐허로 변했다.

한때 글로벌 시장 점유율 30%를 차지했던 중국의 조선소는 이미 75%가 문을 닫았다. 영국의 조선·해운 분석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중국 679개 조선소 중 운영중인 곳은 169개뿐이다. 나머지 510개는 놀고 있다. 중국은 ‘2015년 조선업 세계 1위’를 목표로 2000년대 초부터 산업의 몸집을 불려왔다. 그러나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무역 규모가 위축되고 컨테이너선 등 신규 수주가 줄면서 심각한 공급과잉 상태에 빠졌다. 중국 정부는 부랴부랴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들며 조선업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으로 유도하려 했지만 대내외 경기 부진에 부딪혀 성과를 내지 못했다.

세계 1위 넘보다가 허망한 추락
노동자 대량 해고 구조조정 몸살

중국 경제매체 왕이차이징은 “중국 조선업은 생산 과잉과 기술력 부족으로 업황이 악화되고 출혈 경쟁 심화로 민영 기업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대형 선박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중국 대형 조선소는 2013년부터 꾸준히 감소해 현재 70개 수준으로 크게 줄었고 중소 기업 수백 개가 파산했다고 WSJ는 전했다.

물류업체인 IHS해상무역의 로버트 윌밍턴 연구원은 “중국 조선업이 정점에 달했던 때 1억5000만 달러(약 1718억원)에 달했던 벌크선 가치는 현재 겨우 4500만 달러에 그친다”고 말했다.

중국은 지난해 양대 해운사인 중국원양해운(COSCO)과 중국해운(CSCL) 산하 조선소 11곳을 하나로 합치기로 하는 등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경기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중국 내 수주를 제외하면 사실상 수주가 없고 그마저도 ‘유령 잔량(Phantom Order)’이라는 의문이 제기됐다. 영국의 해운 컨설팅업체 MSI는 “중국 조선업 수주 잔량의 3분의 1이 허구일 가능성이 있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MSI의 아담 켄트 박사는 “중국 조선업계의 올해 인도 물량이 1700만 CGT(표준화물환산톤수)에 달하는데, 이 중 상당수는 실제 인도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중국 조선업계는 2000만CGT를 인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실제 인도량은 절반인 1000만CGT에 그쳤다. 켄트 박사는 “올해 인도량의 대부분은 2013년께 계약을 맺은 것이고 선박은 대부분 2~3년 내로 인도가 완료된다”며 “계약이 허구였거나 계약이 취소됐는데 공개하지 않아 허구 수주 잔량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중국 조선업의 위기는 곧 한국 조선업의 기회로 연결된다. 당장 올들어 수주 실적이 역전됐다. 클락슨에 따르면 지난 1월 세계 선박 발주량은 한국이 33만CGT, 중국은 11만CGT, 일본이 2만CGT로 한국이 1위를 차지했다. 이강록 교보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발주량이 호황기 때를 회복하지 못한다 해도 중국 등 글로벌 조선 생산능력의 50% 이상이 감소돼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등 한국 대형조선소들의 먹거리로는 충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소아 기자 ls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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