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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 전인데” … 안진회계법인 징계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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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국내 2위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이 위기에 몰렸다. 대우조선해양 분식회계에 대한 책임으로 업무정지를 당할 수 있어서다. 안진은 2010년부터 대우조선의 외부감사를 맡았다. 2014년 사업보고서 때까지 감사의견 ‘적정’을 제시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안진은 2015년도 사업보고서 작성 과정에서 “2015년 추정 영업손실 5조5000억원 가운데 약 2조원을 2013~2014년 재무제표에 반영해야 한다”고 밝혔다. 2013년과 2014년 각각 4242억원과 4543억원이던 영업이익은 7898억원과 7546억원의 영업손실로 바뀌었다.

대우조선 분식회계 밝혀져 궁지
금융당국 수 개월 업무정지 움직임
안진 측 “조직적 개입 전혀 안했다”

불똥은 회계감사를 맡았던 회계사와 안진으로 튀었다. 지난해 12월 감사를 맡았던 안진의 전직 회계사가 구속기소되고, 현직 회계사 3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법인 안진도 직원 관리감독소홀 혐의로 기소됐다. 1심 재판 결과는 5월에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초점은 안진이 법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대우조선의 분식회계에 가담했거나 묵인했느냐 여부다. 안진 측은 “아니다”는 입장이다. 이정인 안진 위험관리본부장은 “조선업과 같은 수주업은 특성상 추정과 가정이 많아 수사권이 없는 회계법인의 입장에서는 대우조선이 준 자료를 바탕으로 감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안진이 존폐 위기에 놓은 것은 금융당국의 제재 시점과 수위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3월 말에 최소 수개월 이상의 업무정지를 예상한다. 논란은 여기서 시작된다. 재판 결과도 나오기 전에 금융당국이 행정 조치를 하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신규 감사 계약을 3월 말이나 4월에 체결한다. 현재 안진이 맡은 외부감사 기업 1400여 개 중 신규 계약을 해야하는 곳이 1100여 개다. 시장 예상대로 3월에 업무정지 처분이 내려지면 안진은 감사 일감의 80%를 날리게 된다. 이 본부장은 “3월 말에 업무 정지가 되면 5월 법원 판결에서 무죄를 받아도 돌이킬 수 없게 된다”라고 말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법인의 잘못도 크기 때문에 1심 재판과 상관없이 감리가 끝나면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에 제재 안건을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금융위가 제재 절차를 밟으면 2007년 말 결정과는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이라 원칙 없는 행정 논란이 일 수 있다. 당시 외국은행인 HSBC가 금융위에 외환은행 지분 인수승인을 신청했지만, 금융위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에 대한 법원의 선고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승인이 미뤄진 사이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HSBC는 외환은행 인수를 철회했다.

최중경 공인회계사회 회장은 “ 단순한 부실감사라면 법인의 업무정지 같은 제재는 책임 비례 원칙에 맞지 않는다”며 “ 재판이 진행중인데 나머지 직원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은 직원의 생존권 문제와 직결된다”고 말했다. 안진의 회계사는 1100여명이다. 대우조선 관련 팀에는 10여 명이 일을 했다.

안진 측은 미국 회계법인 아서앤더슨의 사례를 참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2001년 12월, 15억 달러 규모의 분식회계 여파로 세계 최대 에너지 기업 엔론이 파산을 신청했다. 엔론의 회계 감사를 맡았던 회계사와 아서앤더슨은 형사기소됐다. 하지만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5년 증거부족을 이유로 아서앤더슨에 무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늦었다. 아서앤더슨은 이미 2002년 문을 닫았다.

오태환 안진 감사본부장은 “입증되지도 않은 잘못으로 제재를 받아 회사가 문을 닫는다면 이는 한국 회계산업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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