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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불호 갈린 독주회, 피아니스트 임현정

중앙일보

입력

“음악에서 절제라는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피아니스트 임현정(31)은 4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 프로그램북에 이렇게 썼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피아니스트다. 26세에 음반사 EMI에서 첫 앨범을 내고 빌보드와 아이튠스의 클래식 차트에서 1위에 올랐다. 유튜브의 동영상은 조회 55만을 기록했다. 그는 보통 피아니스트들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12세에 프랑스로 떠났고, 콩쿠르 입상이나 학구적인 시도가 아닌 파격적 연주 스타일로 청중에 회자됐다.

논란은 많다. 속도는 유례없이 빠르고 음악에 대한 해석 또한 이전의 어떤 피아니스트와도 닮지 않았다. 작곡가 대신 피아니스트의 해석만 남는 연주다. 때문에 임현정은 대중은 열광하고 비평가는 외면하는, 독특한 위치에 있다.

세번째 한국 독주회인 이번 무대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음악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이 깨졌다”는 비판과 “지독한 사랑과 같은 예술”이라는 찬사가 공존했다. 이제 그 각기 다른 이유 또한 들을 차례다. 이토록 논쟁적인 연주자는 흔치 않기에 상반된 의견을 한번에 담는다.

음악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깨트리는 무리수-박제성(음악칼럼니스트)

이번 리사이틀을 위해 지난 10여년을 아껴둔 레퍼토리를 선보였다는 임현정. 그녀는 프로그램 북에 자신이 직접 쓴 음악적 수필을 실어 구태의연함을 벗어던지고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고 싶다는 열망을 드러냈다. 검고 긴 자켓과 트레이드 마크인 긴 생머리를 흩날리고 무대로 들어온 그녀는 슈만 카니발의 첫 곡인 프레앙뷜(서곡) 화음을 누르자마자 경이로운 스피드로 건반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드럼 스틱으로 때리는 듯한 타건, 악센트와 화음에 묻혀버리는 리듬, 미처 소리를 내지 못한 채 다음 음에 묻히는 음표들, 속주의 음향 덩어리 가운데 실종되어버린 내선율들과 구조를 위협하는 옥타브들로 점철된 25분여가 지나갔다. 그녀가 기존 음악의 상투성과 보수성을 타파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에 대한 안티테제로 속주(速奏)를 선택하여 피아노 음악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깨트리려는 것은 명백한 무리수로 보였다.

속주는 청중을 흥분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테크닉임은 분명하지만 임현정의 경우에 있어서는 슈퍼 비르투오소들의 그 첨예한 완성도에 미치지 못했고 테크닉을 넘어선 음악적 설득력(브람스)과 서사적 요소들의 개연성(프랑크) 또한 찾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다만 연주자가 해석에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고 자신이 오랜 동안 연마해 온 라벨의 거울에서만큼은 완성도 높은 연주를 들려주었다. 생각해보면 자기과시적인 테크닉과 충격적인 음향효과로 청중의 몰입도를 높인 앙코르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자족적 세계의 출발점이 아닐까 싶다. 특히 자신이 편곡한 '밀양 아리랑'은 아주 근사했다.

다르게 연주하는 이유 찾을 수 없어-홍형진(소설가)

좋은 음악회에 대한 내 기준은 아주 단순하다. 둘 중 하나를 충족하면 된다. 첫째는 연주하는 곡에 기대하는 무언가를 잘 구현해낸 음악회이고, 둘째는 미처 인지하지 못한 측면을 제시해 그 곡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끔 하는 음악회다. 그간의 행보를 볼 때 임현정에게 기대하는 건 응당 후자다.

그동안 발매한 앨범과 두 차례의 리사이틀을 통해 난 편견에 가까운 확신을 가지고 임현정을 바라보고 있다. 요약하자면 ‘뚜렷한 직관을 바탕으로 다른 해석을 제시하는 연주자다. 한데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도통 가늠할 수 없다’가 되겠다. 즉 다르다는 건 알겠는데 왜 그렇게 연주하는지는 헤아리지 못한단 뜻이다.

그 확신은 세 번째로 찾은 이번 리사이틀을 통해 좀 더 굳어졌다. 여전히 의도를 읽을 수 없었으니까. 다만 이전의 리사이틀과는 다소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는데 아무래도 대곡 중심이었던 예전에 비해 프로그램이 상대적으로 가벼웠기 때문으로 보인다. 거시적인 구조를 조망하기엔 여전히 낯설고 종잡기 어려웠지만, 미시적으로 쪼개서 들으면 신선하게 다가오는 대목이 여럿 있었다. 특히 라벨 ‘거울’은 임현정이라는 연주자가 본디 어떤 기질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은근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좋은 음악회였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다시 찾을 의향이 있냐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겠다. 그가 어떤 음악을 빚어내고자 하는지 읽어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다. 관객을 이 정도로 혼란스럽게 하는 연주자는 흔치 않다. 나름의 목소리를 갖고 있는 연주자이고 난 그 점을 존중하고 싶다.

신선한 기획, 음색은 단조로워-김주영(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새로운 레퍼토리로 꾸며진 독주회를 감상하고 예전부터 그녀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떠오르던 ‘왜? 라는 질문의 강도가 더욱 강해짐을 느꼈다. 사실 이런 의문은 임현정 자신이 더욱 많이 가지고 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피아노 연주라는 수단을 통해 숱한 열광과 감성의 미로를 풀어나간 끝에 만나게 되는 예술적인 해결점인 ’침묵의 소리‘ (그녀가 쓴 책의 제목이기도 하다)를 열심히 찾아나가고 있다고 생각된다.

사제지간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그보다 더 강한 음악적 끈으로 묶여있는 슈만과 브람스, 이상은 비슷했으나 상반된 방향의 작품성을 보였던 라벨과 프랑크를 묶은 기획은 신선했다. 열정적인 비르투오시티로 문을 연 슈만의 ‘사육제’ 는 짤막하게 등장하는 갖가지 축제의 이미지가 한꺼번에 소용돌이치는 듯한 통일성을 보여주었으나 캐릭터마다의 개별적인 차별성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다. 이어서 연주한 브람스의 8개의 소품집 작품 76은 연주자 특유의 속주가 전곡 중 절반을 차지하는 ‘카프리치오’ 와 적절히 어우러졌으며 교묘한 루바토에 의한 억양도 인상적이었으나 슈만에서 들려주었던 단조로운 느낌의 음상은 일관되게 이어졌다. 또한 작곡가의 전성기를 관통하는 걸작으로서의 사색적 면모와 거기서 나타나야 할 깊은 공명감각이 다소 표면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소재가 지닌 특성을 마치 거울을 보듯 나타낸다는 암시가 들어있는 라벨의 모음곡 ‘거울’ 다섯 곡은 재빠른 손가락과 감각적인 페달링을 통해 작품이 지닌 본질 중 돌발적이고 즉흥적인 기질이 잘 표현된 호연이었다. 대기만성의 작곡가로 알려진 프랑크의 ‘전주곡. 코랄과 푸가’ 는 젊은 시절 피아노의 대가를 꿈꾸던 프랑크의 모습을 많이 의식한 듯 선이 굵고 명인기를 강조한 해석이 두드러졌다. 세심하지만 풍성하게 설정된 페달과 작품의 내면에 지닌 음울한 정서를 응축시켜 강한 에너지로 폭발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음악에 옳고 그름은 없다-이단비(무용·공연칼럼니스트, 방송작가)

‘충격’이란 단어가 그 부정적인 색채를 걷어내고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연주를 들을 때 그렇다. 그녀의 폭발적인 에너지에 관객들은 이따금 망치로 머리를 얹어 맞은 기분에 휩싸이곤 한다. 이번 리사이틀 1부에서 슈만과 브람스 곡을 듣고 놀라는 관객들도 꽤 많았으리라.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던 슈만과 브람스가 아니였다면, 이건 저 연주자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연주는 창공을 가로질러 폭죽을 터트리는 불꽃놀이다. 때로는 정신을 빼놓을 정도로 빠른 템포와 강렬한 소리가 지친 삶에 큰 위로와 응원이 되는 법이다. 프랑스 작곡가들에 매료돼 12살 나이에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던 임현정. 이번 리사이틀 2부에서 라벨과 프랑크의 곡을 연주할 때 그녀는 프랑스적 감성과 화려한 색채미를 터트렸다. 특히 라벨의 거울을 연주할 때는 그 곡과 작곡가와 지독하게 사랑에 빠진 한 연주가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술이란 모든 위험을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임현정 자신이 한 말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곡 하나를 위해 거침없이 달려가는 모습. 그것은 사랑에 빠진 자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관객과 아티스트는 예술을 통해 대화하고, 또 함께 늙어가는 평생의 친구다. 한 아티스트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작곡가와 대화하고 그것을 음악소리로 세상에 내어놓을 때,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방식으로 그 아티스트와 마주 대하면 된다.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 것은 없다. 임현정 스타일 그대로 그녀의 예술을 마주대할 때 이제까지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이 당신의 귀에 들릴 것이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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